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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맥주와 다람쥐와 치약에 관하여
김서령 발행일 2020-11-2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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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작은 선물·어릴적 짝사랑 등
우리는 사소한 일로 위로를 받는다
이런것을 비웃는 사람도 많겠지만
다정한 시선을 소환, 그들도 위로다
서로를 안아 줄 시간은 넉넉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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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우리는 사실 사소한 것들에 위로받는다.

한 며칠, 힘들다고 생각했다. 속엣말을 잘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얼굴에 드러나긴 한 모양이었다.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그래도 다음 날 할 일이 있으니 침대로 가야지, 했다. 그러고 보니 현관문에 걸린 우유 가방에서 우유를 꺼내오지 않은 일이 생각났다. 날이 차니 우유가 상하지는 않았을 거야. 주섬주섬 현관문을 열었다. 초록 박스 하나가 현관문 앞에 놓여 있었다. 맥주 박스였다. 이게 뭐야? 이런 게 왜 우리 집 앞에? 박스 윗면에 볼펜으로 휘갈겨 쓴 글씨가 있었다. '쓸쓸할 땐 혼맥이 최고죠'. 후배였다. 20여분 거리를 굳이 운전해 와서 가져다 둔 거였다. 나는 속도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무거운 박스를 끙끙 들고 들어와 두 병을 마셨다. 마시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캔으로 사지, 병은 버리기도 어렵단 말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 쑥스러워 그랬다는 걸 알아주기 바라면서.

내가 다녔던 중학교 건물은 계단의 높이가 잘잘했다. 한 칸 한 칸 높지 않았다는 말이다. 키 작은 말라깽이였던 나는 4층에 있던 우리 반 교실까지 잘도 뛰어다녔는데, 한 번에 세 칸씩, 기분이 좋은 날엔 한 번에 네 칸씩도 오를 수 있었다. 내가 짝사랑했던 선생님은 그렇게 뛰는 내 등 뒤에서 "참말 다람쥐 같네!"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훗날 나는 친구에게 다람쥐 같다고 말을 했던 선생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가 참말 다람쥐 같았고, 참말 행복했다고. 그 생각만 하면 참말 마음이 좋아진다고. 이후 친구는 일 년에 한 번, 이 년에 한 번쯤 드물게 전화를 걸어온다. 살다 보면 다 그렇다. 자주 연락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대신 전화를 걸어 무턱대고 "요 다람쥐야!" 소리친다. 그럴 때면 거짓말처럼, 농담처럼 기뻐진다. 2교시 마친 쉬는 시간에 매점까지 달려 딸기우유와 보름달 빵을 무사히 사올 수 있을까가 생애 최고의 고민이었던 열다섯 살 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짝사랑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남색 세일러복 스커트의 주름을 탁탁 털던 그 시절이 된 것만 같아 마냥 행복해진다. 그리고 모든 일이 괜찮아진다. 친구는 그런 나를 알아서 "요 다람쥐야!"하고 소리치는 거다.

피곤할 때면 잇몸에서 피가 난다. 저녁이면 여섯 살 딸이랑 양치질을 같이 하는데, 세면대에 치약 거품을 페! 뱉을 때 핏물이 섞이면 꼬마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다. "속상해. 엄마 입에서 피가 나서 난 정말 속상해." 양치질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나는 일 정도야 나에게 별일 아니었는데, 꼬마가 속상해하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 잇몸질환용 치약을 약국에서 샀다. "엄마는 왜 치약을 마트에서 안 사고 약국에서 사?" 묻는 꼬마에게 피가 안 나게 해주는 치약이라 설명을 해주기는 했다. 비타민제를 사려고 들른 약국에서 카드를 긋고 있는데, 돌아보니 꼬마가 목에 멘 제 지갑을 열고 있었다. 지갑은 언제 들고나온 거야? 나도 몰랐다. 핑크퐁 분홍 지갑 안에는 할머니가 올 때마다 준 천 원짜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걸 왜 꺼내? 비타민은 엄마가 카드로 결제했는데?" 꼬마는 나 말고 약사에게 말했다. "잇몸에서 피 안 나는 치약 주세요. 우리 엄마 거 다 썼어요." 약사는 웃었고, 주책맞은 늦둥이 엄마인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얼른 뒤돌아섰다. 그런 걸 들키면 너무 촌스러우니까 말이다.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 위로다. 온통 위로다. 집 앞에 맥주를 몰래 두고 간 후배도 위로지만, 맥주도 위로다. 요 다람쥐야! 불러주는 친구도 위로지만 짝사랑 선생님도 위로다. 엄마의 잇몸질환 치약을 사주는 딸도 위로지만 치약도 위로다. 가벼운 위로가 넘치는 세상이라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안다. 위로 타령 지겹다고, 위로 따위 말고 시스템을 바꾸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내가 왜 몰라. 그들도 위로다. 나를 향했던 다정한 시선들을 소환하며 괜찮아, 괜찮아,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잖아, 나를 달래는 것도 위로인걸. 이렇게 글로 쓰며 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내가 돌려줄 수 있는 작고 낮은 감사 인사라는 것을 그들이 몰라도 괜찮다. 밤은 길고, 우리가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넉넉하니까.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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