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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격랑속에도…연평어민의 삶은 의연했다
김민재 발행일 2020-11-20 제1면
'연평도 포격 10년' 그 섬은 지금

연평도 민간지역 포격현장
19일 오전 10시께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폐허가 된 마을 일부를 그대로 보존해 만든 안보교육관 2층에서 내려다본 연평리 175번지 일대 민간지역 피해 모습. 2020.11.19 /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2010년 11월23일 포탄 170여발 피격
해병대원 2명·민간인 2명 목숨 잃어
'서해5도 발전법' 지원…섬 요새화
해빙후 경색… 불안감 자극 말들뿐
주민들은 오늘도 묵묵히 그물 손질


인천 서해 최북단 연평도 주민들의 하루는 늘 풍랑과 안개가 결정지었다. 날이 좋으면 배를 띄우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외부와 차단된 채 꼼짝없이 섬에 갇혀 지내야만 한다. 부두에 발이 묶인 연평도의 꽃게잡이 어민들은 익숙한듯 오늘의 허탕이 내일의 만선이 되기를 바라며 해를 기다린다.

70년 동안 이어진 남북 대치 상황 속 연평도의 운명이 꼭 그렇다. 남북관계의 파고에 따라 연평도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드리워지기도 하고, 갑자기 평화의 한복판에 놓이기도 한다. 그리고 잔인했던 11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꼭 10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는 굉음과 함께 북한이 쏜 포탄 170여발이 떨어졌다.

면사무소와 민가가 처참하게 폭파돼 불탔고, 매캐한 화약 냄새와 검은 연기가 1천300명이 사는 작은 섬을 뒤덮었다. 주민들은 어선에 몸만 겨우 실어 인천으로 도망쳤다.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우리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이듬해 특별법을 제정해 사업비 9천억원 규모의 '서해5도 종합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연평도 등 서해5도를 살기 좋은 섬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북한의 도발에 강력 대응하겠다며 섬 전체를 요새화해 벙커와 대피소를 짓고, 군비를 증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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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1시께 인천 연평도 안보교육관에서 연평도 주민 김영순씨가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포격 피해 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0.11.19 /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판문점 선언(4월)과 군사합의(9월)로 화약고라 불렸던 연평도에 훈풍이 불고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남북은 일체의 군사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어민들의 숙원이었던 연평도 어장확대와 조업시간 연장이 부족하나마 실현됐고, 2019년에는 남북 관계 악화로 소등했던 등대가 45년 만에 불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개성연락사무소의 폭파와 북한의 연이은 도발, 해수부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 등으로 연평도는 또다시 격랑의 한 가운데 놓였다. 서해평화 이야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쏙 들어갔고, 북한의 포문은 다시 열렸다.

10년 전 찜질방과 임시 주거 시설을 전전하던 피란민들은 그래도 고향을 어떻게 떠나 사느냐며 다시 연평도로 돌아갔다. 인천보다는 북한이 더 가까운 서해5도 주민들은 그때 "섬에 사는 게 애국"이라고 했다.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왜 밖에서 그렇게 떠드는지 모르겠다'고 반응한다. 주민들은 평소처럼 있는데 남북관계 기상도에 따라 평화와 긴장을 손바닥 뒤집듯 얘기한다는 불평이다.

19일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빅카인즈)으로 분석한 최근 10년 연평도 관련 뉴스의 연관어는 사격훈련, 포격 도발, 해안포, 북한군, 긴장감, 불안감, 불법조업 등 우울한 말뿐이었다. 여기에서 '평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연평도 어민들은 오늘 당장 날씨가 흐려 출항하지 않는다고 해도 묵묵히 그물을 손질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연평도 포격 10년, 평화를 향한 출항에 다시 시동을 걸 때다. → 관련르포 4면([현장르포]'연평도 포격 10년' 아직도 잊지못한 기억)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