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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전세난 그리고 갑, 을, 병
허동훈 발행일 2020-12-03 제18면
'전세가 급등' 임대주택 구하려는
세입자의 피해로 나타나는 현상
재계약 만료되면 수혜자 을에서
'피해자 을' 즉 병으로 처지 변경
공공임대 꾸준히 늘리는게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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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
임대차법 개정 이후 전세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론적으로 집값은 앞으로 계속 발생할 임대료를 현재 가치로 환원한 것이다. 임대료가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단순하게 표현하면 '집값=임대료/이자율' 관계가 성립한다. 전세 역시 임대료를 현재 가치로 환원해서 목돈으로 맡기는 것이므로 '전세가=임대료/이자율'이 성립한다. 지금처럼 금리가 아주 낮으면 집값뿐만 아니라 전세가 역시 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집값이나 전세가나 다를 바 없는데 집값은 전세가보다 꽤 높다. 그 이유는 '집값=임대료/이자율' 공식이 너무 단순해서 보유세, 유지·수리비, 감가상각, 자산가격 상승 기댓값(미래 임대료 상승에 대한 예상치이기도 하다)을 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항목들은 현 세입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가장 중요한 항목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집값이 오르거나 내려도 당장은 세입자와 무관하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으면 집값이 전세가보다 높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처럼 집값이 안정된 시기에는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서 전세가가 집값에 근접한다. 집값은 미래에 대한 전망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달리 표현하면 집값에는 투기적인 수요가 영향을 미친다. 투기가 심하면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인 가치와 괴리가 커진다. 따라서 투기가 우려되면 대출 규제 등을 통해서 집값 상승 억제를 시도해볼 만하다.

반면 계약기간이 짧은 전세는 투기적 수요가 없고 모두 실수요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투기 가능성이 있는 집값과 달리 실수요를 반영하는 전세가를 규제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왜곡된다. 하지만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규범적 가치가 있으므로 전세가 또는 임대료 통제에 대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임대차법 개정도 그런 맥락에서 추진됐는데 전세가 급등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동시에 여러 집에서 사는 가구는 거의 없으므로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임대주택 총량도 고정되어 있다. 투기도 없고 임대주택 총량이 줄지도 않았는데 왜 전세가가 급등할까?

정도 문제이긴 하지만 갑의 몫을 줄여 을을 돕는 정책은 바람직하고 필요한 정책이다. 예산 제약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부 을만 도움을 받고 나머지 을은 도움을 못 받는 정책은 형평성 문제가 있지만 차선책은 된다. 그런데 일부 을만 수혜자가 되고 나머지 을은 피해를 보는, 즉 을의 일부를 병으로 만드는 정책이 있다. 임대차법 개정이 그 사례다. 전세가 상승 없이 계약기간이 연장된 을은 수혜자가 되지만 전세 공급 물량이 잠겨 새로 전세를 구하는 을은 피해를 본다. 연장계약 시세와 신규계약 시세를 평균하면 전세가 급등세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을 것이다. 즉 기존 계약 연장시 전세가가 시세보다 낮은 만큼 신규 계약 전세가가 급등한 것이다.

임대료 규제로 유명한 스웨덴에선 임대료가 지나치게 낮아서 임대주택을 얻기 위한 대기기간이 10~20년은 예사고 신규 임대주택 공급도 부족하다. 공급이 모자라므로 이민자나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임대주택을 구하는 젊은 층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도시 외곽으로 내몰린다. 불법적인 재임대도 성행한다. 기존 세입자는 시세보다 훨씬 낮은 임대료 혜택을 누리고 재임대로 수입을 챙긴다. 임대료 규제가 임대사업자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을을 수혜자와 피해자로 나눈다.

한국의 임대료 규제는 임대료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가 아니고 세입자가 원하는 일회성 연장계약에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규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임대인의 피해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나중에 크게 올릴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전세가 급등은 기존 세입자의 편익이 새로 임대주택을 구하는 세입자의 피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 수혜자인 세입자는 재계약이 만료되면 수혜자 을에서 피해자 을, 즉 병으로 처지가 바뀐다. 경제정책에는 선의의 동기가 좋은 결과로 귀착되지는 않는 경우가 흔하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을을 수혜자와 피해자로 나누면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늘리는 게 정답이다. 세금으로 손실을 메워야 하므로 그 부담은 갑이 질 수밖에 없지만 그건 나쁜 정책이 아니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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