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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曾有의 2020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박성현 발행일 2020-12-31 제1면
얼굴 가린 마스크, 서로의 마음은 가릴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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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복 입고 밤낮으로 환자 살핀 의료진
자영업자 임대료 감면해준 착한 건물주
힘든일상 묵묵히 견딘 우리 모두가 '희망'


2020년 사진첩 속 우리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습니다. 마스크는 우리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르게 합니다. 거리두기로 지친 일상에서 미소가 사라져 버렸고 슬픔마저 초월했나 봅니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은 집을 나서면서 신발을 신기도 전에 마스크부터 찾습니다. "엄마, 코로나는 언제 끝나요?" 아이는 그 흔한 감기라는 말 보다 코로나라는 말을 먼저 배웠습니다.

올해 입학한다며 멋진 가방을 선물 받았던 8살 조카는 그 가방을 메보지도 못하고 화면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학교 운동장과 교실은 주인을 잃고 먼지만 날리고 있습니다.

해넘이를 같이 하자며 손주들에게 줄 과자랑 선물을 사놓고 기다렸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애써 괜찮은 척 "올해는 오지 마라"고 하십니다. 아들과 함께 마시려고 사 둔 막걸리가 아비의 마음처럼 김이 빠져버렸습니다.

미증유(未曾有).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 2020년 벌어졌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찾아온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의 삶을 일순간에 바꿔 놓았습니다. 같이 밥 먹고, 대화하고, 손을 잡는 일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 이제야 알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암흑의 터널 속에서 보이는 한 줄기 빛 때문일 것입니다. 그걸 희망이라고 부른답니다.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방호복을 입고 방역 최전선에서 밤낮으로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이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제발 음성이길….' 기원하며 하루 수천 건의 진단 검사를 하는 보건 인력도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힘든 자영업자를 위해 임대료를 감면해준 건물주,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따뜻한 정을 나눈 얼굴 없는 천사들이 모두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봐 집 안에서도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살았던 시민들, 거리두기를 감내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준 우리 이웃들이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높으신 분들은 지금도 '내가 더 잘났네, 네가 더 못났네' 하고 마스크 사이로 침이 튀는 줄도 모르고 싸웁니다. 우리가 올 한 해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반쪽 얼굴로 살아간 이유는 가리지 않은 눈으로 소외된 이웃을 더 살펴보고, 닫히지 않은 귀로 절박한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 들으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긴 터널을 뚫고 나오며 마스크를 벗게 되는 날, 비로소 맑은 숨이 마셔지는 그날, 우리의 희망이었던 이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