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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과 직접협상 부담…'계약갱신청구권' 무용지물
이여진 발행일 2021-01-18 제12면
통보않고 매각·등기이전 등 피해
'행사여부' 계약서에 명시 어려움
"소송 포기 그냥 나가는 사람 많아"


전월세 계약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기간이 되기 전에 '얼리버드'로 매매하는가 하면 여전히 집주인과 협상을 해야 하는 부담에 계약갱신청구권이 무력화되고 있다.

용인 수지구에 사는 A씨는 최근 전셋값이 부쩍 오르자 기존 전셋집 계약을 2년 연장하기로 마음먹고 집주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집주인이 기존 임대차계약이 끝나기 전 A씨에게 알리지 않고 집을 판 뒤 새 집주인에게 소유권 등기를 옮겼으니 자신에게는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새로운 집주인이 실거주하면 A씨는 집을 비워줘야 할 수 밖에 없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의 시세는 8억원가량이었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프리미엄으로 5천만원 상당의 웃돈까지 붙어서 거래됐다. 매수자 입장에서도 웃돈을 주더라도 매매가에 전셋값을 뺀 금액만큼만 내면 주택 소유권을 가질 수 있어 이익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되면서부터 불거졌던 '집주인과의 협상' 문제도 여전하다.

지난해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며 정부는 주택 매매 계약서에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명시하도록 했다. 임차인이 집을 나간다고 했다가 나가지 않거나 혹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더 거주하라고 했다가 번복하는 등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3일부터는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가 명시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항의로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확인하는 주체가 부동산 중개업자에서 임대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국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해야 할 공인중개사가 계약갱신청구권 문제에서 쏙 빠지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직접 청구권 행사 문제를 협상해야 한다.

용인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도 집주인이 직계존비속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해 소송전까지 가는 걸 포기하고 그냥 나가는 세입자들이 많다"며 "앞으로 매매계약서에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명시한다고 하더라도 세입자가 집주인과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