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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코로나 설날'의 단상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발행일 2021-02-1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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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도민 1천명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85%가 이번 설에 고향을 찾지 않겠다고 답했단다. 연휴 기간 중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사람도 64%나 됐다. 온라인에는 명절 귀향을 고집하는 시댁을 고발해달라는 며느리들의 분통이 터지고, 쪼개기 귀성 등 각종 묘안이 백출한다지만 정부의 5인 이상 집합금지로 '집콕 명절'이 대세가 된 모양이다.

설 대목을 고대했던 전통시장 상인들은 울상이다. 귀성 행렬이 없으니 차례상과 명절 밥상이 간소해졌고, 장을 보는 주부들이 사라졌다. 명절 선물도 대형 온라인 쇼핑몰의 택배 서비스가 독점하니, 대목을 노리고 선물용 재고를 쌓아놓은 전통시장 상인들만 폭탄을 맞았다. 명절 선물로 들어온 고기와 음식으로 식비를 아꼈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도 올해는 직접 고기를 사드셔야 할 듯 싶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 제주도와 강원도 해안도시 숙박업소들은 빈 곳이 없단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도 여행객들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마침 자영업 영업시간이 오후 10시까지 늘어났으니, 여행객 지갑에 생계를 매달고 있는 관광지 자영업자들은 반짝 호황이 반가울테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호황은 아슬아슬하다. 9시 규제에 계속 묶여 눈물의 '점등 시위'에 나선 수도권 자영업자들에 견주면 황송한 설 특수이겠다.

가족 모임이 흩어지다 보니 명절 단골뉴스였던 가정폭력과 명절이혼도 확 줄어들겠다. 명절 밥상에서 케케묵은 가족사가 몸싸움으로 번져 파국에 이르는 가족, 명절 갈등으로 파경에 이르는 부부가 적지 않았다. 아예 안 모이니 갈등도 없을 터, 이러다가 비대면 명절이 문화로 굳어질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세대 간 명절문화 전쟁이 불가피할 듯하여 심란하다.



그래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같은 이가 있어 스산했던 설 풍경이 따뜻해졌다. 재산의 절반인 5조원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자선이 아니라 사회의 갈등구조를 해결해 전체의 공익을 실현하는데 쓰겠다고 한다. 빌게이츠 재단에 착안한 듯싶다. 통 큰 명절 선물이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김 의장이 애송한다는 에머슨의 시구란다. 집콕 명절에 조용히 새겨 볼 만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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