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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기녀 군산월의 비련
김윤배 발행일 2021-04-09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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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김진형과의 짧은 만남
한양 따라가다 결국 되돌려 보내져
그는 이별의 슬픔 시로 읊어 전해
그녀 절규하지만 그의뜻 거역못해
배반의 상처 평생 지울수 없었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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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김진형(1801~1865)은 185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인물로 1853년 홍문관 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된다. 그해 7월12일 귀양길에 올라 한 달이 채 되지 못한 8월6일 귀양지에 도착한다.

명천 고을현감은 김진형을 위해 분에 넘치는 환대를 준비한다. 그가 언제 귀양에서 풀려 중앙정계의 거물이 될지 모르는 일이어서 환심을 사두어야 했던 것이다. 고을현감은 8월25일 김진형을 위한 칠보산 유람행사를 주최하고 고을의 기생들을 동원한다. 이들 기생 중에 군산월이란 젊고 아리따운 기녀가 있었다.

김진형은 군산월을 보는 순간 미모에 빠져들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김진형은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김진형의 나이 쉰셋이었고 군산월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군산월은 김진형을 만나 함께하게 된 기쁨을 시로 남긴다. '전생에 연분 있어 임금님이 보내신가/칠보산 첫 대면에 언약 굳으시니/칠보산 행차 후에 본집에 돌아와/나으리 모시기를 예의로 모셨다네' 칠보산 야유회 이후 군산월은 김진형의 애첩이 되었던 것이다.

김진형의 죄는 무거운 것이 아니어서 9월25일, 유배에서 풀린다. 한양으로 떠나게 된 김진형은 군산월을 함께 데리고 가야 했지만 유배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첩을 얻어 살았다는 험담을 듣는 것이 두려워 그녀를 남장을 시킨다. 군산월은 남장을 하고 김진형을 따라나선다.

한양으로 향하는 길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김진형에게 군산월은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는 군산월을 되돌려 보내기로 작심하고 주안상을 마련한다. 이별주였던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뜨겁게 사랑한 여인이었던 군산월, 헌신적으로 자신의 수발을 들었던 여인이었다.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겠는가. 이별의 슬픔을 읊은 시가 전한다. '눈물이 흘러내려 반 잔 술이 한 잔 되고/한 잔 술이 넘쳤구나/다감다감 돌아서서 남북을 향해 설 제/또 다시 당부하되/잘 가거라/잘 가시오' 이제 술자리가 끝나면 한 사람은 남쪽을 향해서, 한 사람은 북쪽을 향해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잘 가거라'라는 이별의 말 속에 백 가지 의미가 담기는 것을 김진형은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는 것이었지만 이 길이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에 대해 군산월은 다음과 같은 시로 절규하지만 김진형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이게 차마 웬 말이요 버릴 심사 계시거든/칠보산 행차 때에 아예 멀리 하지/무단히 언약 맺고/몇 번을 몸을 굽히던 그 정이 태산 같아/허다 사람 다 버리고 험코 험한 먼먼 길에/모시고 왔더니/그다지도 무정하고 그다지도 야속하오' 김진형의 배반이 군산월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사랑의 종말은 이처럼 씁쓸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다.

김진형은 명천의 북천 유배의 기록을 장문의 문장, '북천가'로 남긴다. '북천가'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령을 받게 된 처지와 한양으로부터 북관까지 가는 유배의 행로를, 북관에서 그곳 수령의 융숭한 환대와 칠보산 유람과 기녀 군산월과의 사랑을, 북관에서부터 유배지 명천까지 이르는 과정과 명천에 당도하자마자 방면된 소식을 접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북천가' 중에서 군산월을 떠나보내는 장면이 압권이다.

'군산월의 거동보소 깜짝이 놀라면서/원망하며 하는 말이/버릴 심사 있었으면 중간에 못하여서/어린 사람 유혹하여 누구 없는 외로운 곳/게발로 집어 물어 던지듯이 버리시니/이런 일도 있습니까. 나으리 성덕으로/사랑이 배부르나 나으리 무정하여/바람 앞에 떨어지는 꽃잎이 되었구려./오냐 오냐 나의 뜻은 그렇지 아니하여/십리 만 가잤더니 천 리나 되었구나./저도 부모 있는 이별하는 심회로서/웃으며 그리 하오, 눈물로 그리 하오./새벽빛은 은은하고 가을 강은 반짝이는데/붉은 치마 눈물 흘려 학사머리 희겠구나./가마에 태워 보내 저 멀리 돌려보내니/천고에 악한 놈 나 하나뿐이로다'. 그는 자책하지만 군산월의 비련을 달래지는 못한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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