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손잡아 주지 않아도… 엄마와 아들은 함께 자라고 있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 김도현(25)씨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는 표현으로 리모컨을 들어 보이자 엄마 정미경(52)씨가 "리모컨 주세요"를 또박또박 다섯 번 반복하며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2022.3.17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지난 16일 오후 6시20분 고양시 일산동구 아파트 현관에서 25살 청년 김도현씨를 만났다. 도현씨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과를 마치고 막 집에 돌아온 참이다."도현이 왔어?" 아들의 손을 잡은 정미경(52)씨가 익숙하게 계단을 오른다. 도어락 앞에서 엄마는 아들의 손가락을 붙잡고 숫자를 천천히 되뇌며 비밀번호를 누른다."도현이가 맨날 마지막 번호를 잊어버려요"라고 말하며 정씨가 멋쩍게 웃었다. 도현씨는 1급 발달장애인이다.
집 안에서 도현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관찰자가 누구일까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귀가 후 엄마는 아들을 먹일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엄마가 주방에 있는 사이 도현씨는 집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집을 비운 동안 달라진 게 있는지 확인하는 '루틴'이라고 한다.
식사 준비로 한창 바쁜 엄마 옆에서 도현씨가 무언가를 요구한다. 요구사항은 목소리의 높낮이로만 파악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인 도현씨가 말을 하지 못해서다. 단어도, 문장도 없지만 엄마는 대번 아들의 요구를 알아 맞힌다. "텔레비전 보고 싶어? 밥 먼저 먹고 보자."
미경씨는 아들의 손가락을 집어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도현이 좋아하는 '뽀로로' 보려면 이렇게 하면 돼."
정미경 씨가 식사 중 아들 김도현씨에게 반찬을 혼자 뜰 수 있게 가르쳐 주고 있다. 2022.3.17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미경씨는 '멋지고 착한 청년 도현이'를 그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미경씨와 도현씨처럼 우리 주위엔 많은 수의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산다. 전국의 발달장애인은 모두 25만5천207명(2021년 기준)으로, 발달장애인 5명 중 1명이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 소식을 비극으로 접한다. 최근 수원시와 시흥시에서 같은 날 엄마의 손에 발달장애인 자녀가 숨졌다. 두 사건을 접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비정한 범행을 저지른 엄마들을 나무라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말은 부모가 짊어지는 돌봄 부담을 줄여 이런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해달라는 절규에 가깝다.
정미경 씨가 호흡이 고르지 못해 양치를 혼자 할 수 없는 아들에게 양치를 시켜주고 있다. 2022.3.17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발달장애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의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선 발달장애인의 기본적인 특성과 돌봄 현황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절대 다수의 발달장애인은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2020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는 비율은 14.6%, 자폐성장애인은 6.6%에 불과했다. 전체 장애인 평균이 47.8%인 점을 고려하면 극히 낮은 수치다.
결국 발달장애인 중 상당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돌봄 책임은 대체로 부모에게 있다. 복지부가 장애인들을 주로 지원해주는 사람의 유형을 파악한 결과 지적장애인의 66.4%, 자폐성장애인의 76.3%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전체 장애인의 20% 정도만이 부모의 조력을 주로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돌봄 부담이 크다는 사실이 엿보인다.
"예전에 도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 휴대폰 소리가 울리니까 휴대폰 쪽으로 손을 뻗었어요. 아이가 말을 잘 못하는데, 갖고 싶어서 그런 거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애는 멀쩡한데'라고 하면서 욕을 하는 거예요. 그때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진 사람들과 저희 가족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아직도 느껴져요."
그래서 미경씨는 아들과 나들이를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가…"라며 양해부터 먼저 구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한다. 혹여 아이가 타인에게 실수를 할까 눈치를 보는 법도 늘었다.
정미경 씨가 침대에 누운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2022.3.17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그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제도적 보호 장치들이 그 목적에서 벗어나 격리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도현씨의 경우에도 아침에 아파트 단지에서 버스를 타고 주간보호센터에 간 뒤, 저녁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특수한 공간만 정적으로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저는 이 특별한 보호가 싫을 때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격리에 가깝거든요. 정부가 지역사회에 정착해 살라고 여러 가지 활동 지원을 해주지만, 결국 한정된 공간에서 이뤄지거든요. 발달장애인들이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동선을 만들어주고, 활동범위를 늘려야 해요. 그래야 발달장애 가정이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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