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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전함의 노예 백대붕 시인
김윤배
입력 2022-08-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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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백대붕의 출생년도는 불분명하지만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이나 '학산초담(鶴山樵談)'의 기록에 의하면 허봉이나 심희수 등과 더불어 터놓고 사귀었다고 되어 있다. 그 기록을 참조한다면 아마도 1550년 전후에 태어났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군함의 노를 젓는 전함사의 노예라고 밝히고 있다. '술에 취해 수유꽃 꽂고/혼자 즐기다가,/산에 가득 밝은 달빛 물드니/빈 술병 베고서 누웠다네./길 가던 사람들아, 무엇하는 놈인가/묻지를 마소./티끌세상에서 세어진 머리 전함사의 종놈이라오.'라고 노래한 것을 보면 전함사의 노예인 것이 분명하다. 때는 음력 9월9일, 상서로운 날인 중양절(重陽節)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시에서 천민 신분 밝혀
같은 처지 시인들과 모임 주도


이날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차거나 산수유 가지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백대붕은 붉은 산수유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어 머리에 꽂고 국화주를 마셨을 것이다. 어느덧 술을 다 마시고 빈 병만 남았을 것이다. 그 병을 베고 누우니 어느새 아흐레 둥글게 차오르는 달이 떠올라 온 산에 달빛이 가득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분노와 절망의 고함이었을 것이다. '지체 높은 놈들아,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전함사의 종놈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시의 제목은 '동유주(東遺珠)', '대동시선(大東詩選)', '소대풍요(昭代風謠)' 등에는 '9일(九日)'로, '기아(箕雅)'에는 '취음(醉吟)'으로 되어 있다. '9일(九日)'이라는 제목은 중양절의 날짜를 드러낸 것이고, '취음(醉吟)'은 국화주를 마시는 중양절의 풍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취음(醉吟)'이라는 시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대붕은 같은 천민인 유희경과 서로 시를 주고받았는데 책 한 질이 될 만큼 많았다.
 

백대붕과 유희경은 같은 처지의 위항 시인들을 모아 '풍월향도'라는 모임을 이끌어나갔다. 17세기 중엽은 사대부들의 폐쇄적인 시단에 하층계급 출신의 위항 시인들이 대거 등장하여 봉건사상에 대한 저항의식과 자아각성의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갔던 시대였다. 1590년, 선조 23년이었다. 백대붕은 서장관으로 있던 허성을 따라 일본 에도에 들렀다. 서장관이라는 직책은 외교 사절을 따라 방문국의 매일 매일의 사건을 기록하여 귀국 후에 왕에게 견문한 것을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관직이다. 이 때 왜인들 앞에서 시를 지어 왜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허균은 백대붕이 궁궐의 열쇠와 왕명의 전달 책임을 맡은 액정서(掖庭署)의 사약(司약)이 되었다고 기록했는데, 잡직이기는 하지만 정6품의 자리였다. 액정서는 조선시대 왕명의 전달과 왕이 쓰는 붓과 벼루의 보관, 대궐 뜰의 설비 등을 맡았던 관청이었다. 그가 어떠한 경로로 그 지위까지 올랐는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시체(詩體)를 사약체(司약體)라 이름하였다. 대체로 당대의 풍을 본떠 시를 지었다고 알려졌다.

왜인 앞에서 지은 시 찬사 받아
당대 풍 본뜬 詩體 '사약체'
임진왜란 참전해 교전 중 전사


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백대붕은 순변사 이일의 관군부대에 병졸로 참전하여 상주 싸움에서 왜군과 교전을 하던 중 전사했다. 전쟁 후에 이일의 부대 참전자들이 후한 상을 받았으나 백대붕은 천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포상에서 제외되었다. 애국애족도, 생사도 양반과 상놈은 같을 수가 없었던 것이 봉건시대의 병든 시대정신이었다. 백대웅의 또 다른 시, 추일(秋日)에서 '가을 하늘에 옅은 그늘 생기더니/화악산은 어둑어둑 그림자 내리네/한 다발 국화꽃은 타향살이 눈물이고/외로운 등불은 오늘 밤 내 마음이어라/반딧불은 풀숲을 날면서 깜빡이고/가랑비는 울창한 숲속에 떨어지네/벗이 그리워 잠을 못 이루는데/창밖에선 이름 모를 산새 우짖네'라고 읊었다. 이덕무는 김우문(金又門)에게 올리는 만사에서 김우문의 시 세계를 높이 사면서 김우문의 호방함이 백대붕에 견줄만하다고 썼다. '깨알 같은 전당시(全唐詩) 손수 베꼈으니/시가의 현묘한 이치 스스로 깨달았도다/우리나라 시선(詩選)에 장차 들 것이니/호방한 백대붕보다 못하지 않구나'가 그것이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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