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현장르포] 발전소 코앞인데 영흥·선재도 온종일 정전… "비상대비 매뉴얼 만들어야"

조경욱
조경욱 기자 imjay@kyeongin.com
입력 2024-03-31 20:23 수정 2024-03-31 21:30

선재대교 화재 그후… 해법찾기 난항


선재도 등 3798가구 19시간여 피해
영흥면 253건 접수·손해 2억원 달해
생산 전기 타지로… 케이블로 받아
한전, 경제성탓 직접 공급엔 부정적

002.jpg
지난 29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선재도에서 바라본 영흥도. 영흥석탄화력발전소에서 시작된 고압 송전선로가 선재도를 통해 신시흥변전소로 이어져 수도권 전력 20%를 공급하고 있다. 2024.3.2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지난 29일 오후 찾아간 인천 옹진군 영흥면은 한 달여 전 발생한 선재대교(선재리 108-50) 화재의 어두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피해 보상 협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를 외면하는 듯 영흥도와 선재도 곳곳의 선거 차량에서는 흥겨운 유세송이 울려 퍼졌다. 영흥도 화재로 이곳 주민 수천 명은 추위 속에 무려 19시간 정전을 버텨야 했지만, 이 지역에 출마한 4·10 총선 후보 누구도 피해 보상과 근본적 해결책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

올해 2월15일 오전 2시17분께 발생한 불로 선재대교 영흥도 방면 교량 하부 30~40m가 검게 그을렸다. 당시 불은 약 2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 하지만 선재대교 하부에 설치된 2만2천900볼트(V)짜리 전력 케이블이 불에 탔고 당일 오전 2시29분부터 오후 9시47분까지 무려 19시간18분 동안 영흥도와 선재도 일대 3천798가구가 정전을 겪었다. 현재는 교량 옆 새로 설치한 전신주에 전깃줄을 이어 전기 공급을 임시 복구한 상태다.

선재대교 화재 당일 오후 4시께 예상됐던 전력 복구가 계속 늦어지면서 숙박업소는 주말 손님 예약을 모두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과 편의점도 문을 닫아야 했다. 영흥수협수산물직판장 상인들은 수산물을 살리는 데 온 힘을 쏟았지만 물고기 폐사는 막을 수 없었다.



직판장 상인 김영민씨는 "상인들 전부 바가지를 들고 수조에 물을 부으면서 산소공급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직판장의 자가발전기까지 반나절을 채 버티지 못하고 고장 나 피해가 더 컸다"고 전했다.

이날 하루 직판장에서 수산물 폐사 등 피해를 입은 상점만 36곳, 손실 추정액은 약 2천만원이다. 정전이 발생한 영흥면 전체로는 253건의 정전 피해가 접수됐고 피해 규모는 약 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옹진군은 파악했다.

정전이 발생한 날 영흥도 기온은 6.8도, 체감온도는 4.4도였다. 지난 2월 기준 영흥면 전체 인구 6천554명 중 60세 이상 인구는 43.9%(2천876명)를 차지한다.

고령층이 많아 추위 등 정전으로 인한 피해에 더 취약했다. 당시 영흥면에서 유일하게 전력이 공급됐던 영흥화력발전소에 임시 쉼터가 마련됐지만 모든 주민이 찾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난방이 되지 않는 집 안에서 이불을 싸매고 버텨야 했다.

이날(3월29일) 오후 하나로마트 옹진농협 영흥점 앞에서 만난 주민 김모(69)씨는 "(화재 당일) 새벽에는 불이 안 들어오고 전화도 안 돼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며 "동네에 발전소가 있는데 전기가 하루 종일 끊기는 게 말이 되느냐. 정전이 인천시청 근처나 서울 한복판에서 났으면 전국이 떠들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 당국의 미흡한 조치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주민들 말처럼 영흥도에는 수도권 최대 규모 발전소인 한국남동발전(한국전력 100% 자회사) 영흥화력발전본부(5천80㎿)가 있다. 이곳은 수도권 전력의 약 20%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 석탄화력발전소다. 영흥면 주민들은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각종 환경오염 물질 피해를 감내하면서 수도권 전력 공급이라는 중추적 역할을 떠안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영흥도에 직접 공급되지 않는다. 영흥도 앞바다에 흉물처럼 설치된 고압 송전탑과 선로는 전기를 신시흥변전소로 보낸다. 반면 영흥도에 공급되는 전기는 한국전력의 경기도 화성변전소를 통해 선재대교 밑 전력 케이블을 타고 들어온다. 영흥화력발전소가 쉬지 않고 가동될 때에도 영흥면 전역이 정전된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 19일 영흥도를 방문해 화재 발생에 대한 신속 대응과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인천시와 옹진군 등이 한국전력과 영흥면 전력 공급 이중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영흥면에 직접 전기를 공급하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변전소 건설은 기존 변전소 과부하나 신도시 조성 등 사유가 발생할 때 경제성, 수요 전망 등을 고려해 정해지는 대규모 투자사업"이라며 "영흥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향후 돌발 상황 발생 시 복구시간 최소화를 위한 비상대응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영흥남성의용소방대 김재홍 대장은 "이번 정전 때 주민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자와 공무원 등이 고생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비상 상황에 대비해 매뉴얼을 만들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경욱기자 imjay@kyeongin.com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