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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한국 현대건축의 죽음

입력 2024-07-10 20:15

한강 건너다닐 때마다 시선을
편하게 해주는 숲·초지 '노들섬'
한 개인, 서구권 명품건축 추앙
한국 현대건축 죽음 공식화
건축계 동조·침묵 되레 불안하다

노들섬
수도권 1호선 종로3가 역사 내 '노들섬(정백호 작)' 홍보 패널의 부분. /전진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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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한국 현대건축이란 경쟁력 없는 품종(品種)의 청소가 시작되었다. 외국산 우세종을 심는 건축에서의 제노사이드(genocide) 전쟁의 점화다. 서울 노들섬 이야기다.

지금 나라 밖에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청소 전쟁이 끝날 줄 모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화염이 멈추지 않는 지구촌, 강자의 목소리만 난무하는 세상, 전쟁은 늘 약소국의 시름을 깊게 한다.

오늘날 한국 현대건축의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다.

현재의 노들섬이 완공되기 전, 뒤바뀌는 행정권력의 입김에 따라 수차례 외제 명품건축을 수입하기 위한 예산 낭비형 건축설계 국제공모전이 반복되었다. 그 지난한 시간이 흘러 마침내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30대 한국인 건축가 맹필수, 김지훈, 문동환(studio MMK) 3인이 현재의 노들섬 프로젝트의 설계자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2016년의 일이다. 이들의 제안은 자연 생태 숲과 음악을 매개로 하는 복합문화기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젊은 그들의 역작은 결과적으로 이전의 노들섬과 관련한 국제설계공모에서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제안했던 시선강탈 형 디자인을 지양했다. 대신 존재감을 최대한 지우고 한껏 몸을 낮춘 형태로 한강의 도도한 물길에 순응하는 작업으로 완공된다. '先운영 後건축'이라는 특별한 시스템, 즉 공간 운영프로그램을 먼저 만들고 그에 준하여 건축공간을 만든다는 성숙한 방식의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노들섬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2019년 가을에 대망의 개장을 하게 됐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가 박원순 시장 재임 시에 발원되고 완공된 일인데다 눈에 띄지 않는 노들섬의 시설물을 바라보는 시각차에 따른 시시비비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점. 그러던 중 오세훈 시장이 재등장한 후 노들섬 설계자인 건축가들은 오 시장의 입맛에 맞게 고쳐달라는 주문에 직면한다. 응할 수 없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갑질에 대한 당연한 거절이었다.

그 후 노들섬은 원설계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오세훈 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글로벌 예술섬으로 조성한다며 국제지명설계공모에 붙여졌고 영국의 유명 설계집단 토마스 헤더윅 사무소를 당선자로 선정했다. 헤더윅은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재밌는 건물을 만들어야 도시 경쟁력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이다. 서울시는 이를 메시아의 말씀쯤으로 받아들여 이제 고작 사용한 지 5년도 안 되는 멀쩡한 건물을 허물어버릴 요량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디즈니랜드식 공중정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강을 건너다닐 때마다 늘 시선을 편안하게 해주는 숲과 초지의 노들섬을 보게 된다. 선유도공원처럼 한강을 한강답게 만드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민의 섬이다. 바로 그곳에 한 개인의 맹목적인 서구권 명품건축(가)의 추앙이 한국 현대건축의 죽음을 공식화하고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된다. 건축계의 동조와 침묵이 외려 불안하다.

/전진삼 건축평론가·'와이드AR'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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