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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명지대 바둑학과 폐지 논란

강희
강희 hikang@kyeongin.com
입력 2024-07-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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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바둑 강국이다. 2016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에게 최초이자 최후의 1패를 안긴 인간대표 이세돌 보유국이다. 한국 최초의 프로 9단 조훈현은 한국형 된장바둑 서봉수와 함께 1980년대를 '조서시대'로 만들었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세계 최고 공격수 '일지매' 유창혁도 있다. 조훈현의 제자 이창호는 청출어람의 경지를 넘어, 수식어가 거추장스러운 세계 기단의 전설이 됐다. 한국 바둑국가대표팀은 지난해 2023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은·동메달을 휩쓸었고, 이어 열린 아시안패러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를 수확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55개월 연속 국내 바둑 1위 신진서 9단과 다승왕 박정환 9단이 한국바둑을 이끌고 있다.

"침묵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게 좋아서요. 상대가 공들여 지은 집을 무너뜨려야 이기는 것도 맘에 들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2022~2023)'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바둑 열풍이 불었다. 청라호수공원 내 바둑공원은 촬영성지로 불리며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바둑계의 현실은 고사 위기에 노심초사다. 1980~1990년대 들어 PC·온라인 게임이 등장한 뒤 타격을 입었다. 바둑알을 잡던 대중들은 '스타크래프트' 마우스를 잡았다. 오랜 대국시간과 어려운 룰, 올드한 이미지로 기원은 경로당이 됐다. 한때 1천500만명이었던 바둑인구는 883만명까지 떨어졌다.

바둑계의 위기는 상아탑으로 번졌다. 명지대학교가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 폐과 절차를 밟고 있어 논란이다. 소속 교수와 재학생들이 낸 가처분 신청은 항소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학생과 유학생은 물론 진학을 준비하던 고3 수험생들은 막막하고 황당하다. 교수와 재학생들은 "학교법인의 재정파탄 문제를 왜 학생들에게 전가하냐"며 목청을 높인다. 1997년 개설된 명지대 바둑학과는 지난 27년간 양건 9단, 한종진 9단, 홍민표 9단, 이민진 8단 등 수많은 프로기사를 배출했다. 또 바둑전문TV 관련 산업 인력과 해외 바둑 보급에도 기여한 바둑인재 양성의 산실이다.

42㎝×45㎝ 바둑판 가로·세로 각 19줄 위에 삶의 묘리가 살아 숨 쉬는 바둑. 세상이 변해도 예도(禮道)를 추구하는 바둑의 가치는 불변이다.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를 살릴 묘수는 없는 것인가. 마지막 한 수가 주목된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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