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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후, 또 4월이 간다·(1)치유의 부재-트라우마]아빠마저 데려간 세월호

경인일보 발행일 2020-04-27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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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때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안산 단원고 손모군의 4·16 기억교실 방명록 한 페이지에 왼쪽에는 부모님의 글귀가, 오른쪽에는 최근 세상을 등진 아버지의 슬픈 소식을 전하는 형의 글귀가 남겨져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기획취재팀

조울증 앓던 부친 결국 예전으로 못돌아가
형이 남긴 동생 방명록에 '안타까운 소식'
"남은 자 위한 전문치유시설 만들어지길"


4월의 봄이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했던 약속,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책임자 처벌 문제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날의 시간에 멈춰 있다. 얼마 전 우리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했다. 먼저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던 두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이 안전한 나라, 그리고 빈틈없는 피해 지원을 약속하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수많은 희생과 맞바꾼 대한민국의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는 데서 이 기획은 출발한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 편집자 주

세월호 참사 때 열여덟의 꽃다운 나이로 숨진 단원고 손모군의 부모님은 '기억교실'을 찾을 때마다 늘 작은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아들의 스무 번째 생일 날에도, 학교 졸업장을 3년 만에 받아들었을 때도, 아들이 꿈속에 나타나 주지 않아서, 또 꿈에 찾아와준 게 반가워서…. 먼저 떠난 작은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칠 때마다 아이의 책상에 올려진 메모장에 '엄마 아빠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편지를 썼다.

'엄마랑 아빠랑 왔다 간다 너무 보고 싶은 내 새끼!', 이 짧은 한 줄은 손군에게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글귀가 됐다.

아버지의 이 편지가 적힌 바로 다음 장에 큰아들 손모(36)씨는 가족의 최근 소식을 전하는 글을 남겼다. '예쁜 내 동생 ○○야! 형수 될 사람하고 엄마, 이모 왔다 간다. 아버지도 니 곁으로 가셨구나. 하늘에서 우리 가족 지켜줘~ 사랑한다 내 동생아♡ 2020.3.11'.

그의 아버지는 지난 2월 스스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자상했던 가장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주위에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지난 21일 만난 손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했다. 작은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조금씩 변해갔다.

수더분했던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다른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 일이 잦아졌다. 그의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았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폭력 성향이 가족에게까지 뻗쳤다.

손씨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같은 상실감을 안고 있는 남은 가족들도 살아야 했다.

"어머니도 심적으로 힘든데, 아버지까지 그러시니까…. 그런데 정신병원에 아버지를 가뒀다는 게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 만에 퇴원시켜드렸죠."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에 손씨는 헛헛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평상시랑 똑같았다고 해요. 어머니, 이모님과 같이 저녁 식사하고 주무시다가 갑자기 새벽에 나가셨대요. 저는 정말 아쉽고, 안타까워요. 가족 뒷바라지에 돈도 한 번 제대로 써본 적 없으시거든요…."

손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겪은 '마음의 병'을 전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시설이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소망했다.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고, 최근에는 아버지까지… 남일 인줄만 알았어요.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제대로 치유될 수 있게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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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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