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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의 '늘찬문화']중년의 삶, 생애 전환의 시기
손경년 발행일 2021-04-1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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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중년을 거쳐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다양하다. 내 부모님의 삶을 보면 '노년을 어떻게 보낼까'를 궁리하셨다기보다,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 둘까'를 고심하셨던 것 같다. 이와 달리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죽기 전까지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관심이 더 많았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수동적인 공부'를 했고 대학교에서 겨우 '능동적인 공부'에 눈을 떴으며 대학원에 가서야 비로소 공부란 '해답 없는 먼 길의 여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위를 받으면 공부가 끝날 것이라 여겼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시시포스(Sisyphos)의 돌이 다시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이력서와 미래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사업계획서를 쓰고 중·장년 남성들 중심의 면접을 거쳐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는 '확인증으로서의 입사 결정'이 있으면 직장생활이 시작된다.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서 상사나 동급 또는 낮은 직급의 동료 중 뜻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며 나 또한 누군가의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일 때도 있었으니 누군가에게 '맞지 않는 상사' 혹은 '동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나의 직장생활을 곁에서 본 사람들은 내가 포장된 탄탄대로를 편히 걸어간 것으로 여겼다. 심지어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럴 경우 나는 "설령 울퉁불퉁하고 바윗덩어리가 앞에 있었을지라도 이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거나 기억에서 지워버려라. 좋은 것만 생의 지문에 남겨 두어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여기게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늘 '얼마나 운 좋은 인생인가!' 라면서 스스로 세뇌해 왔지만 처연할 정도의 진청색 하늘, 구불구불한 산등성이에 수채화처럼 번져가는 산 꽃나무들의 흐드러짐,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봄날을 맞이하면 나의 '불안정한 정서'와 '육체적인 미진함이 주는 힘겨움을 아닌 척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길들여 왔음을 선명히 알게 된다. 그동안의 불운을 갱신하기 위해 '기억 안에서 기억을 먹어'버림으로써 행운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요즘 나는 중년과 노년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서 어떨 때는 미친 듯이 팔랑대는 나비가 되고, 또 어떨 때는 가장 빠른 속도라고 생각하고 달려가는 애벌레가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중년의 시기를 제대로 보냈다면 노년의 삶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제대로 문고리를 찾아 문을 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는 '50+신중년 세대'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전환'의 시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며 '살던 대로의 관성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궤도를 그릴 수 있는 계기'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기획된 것이다.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진행해 왔던 이 프로그램에서 '중년'을 '관성을 가진 자'라고 보고 있으며 그와 달리 '신중년'은 나이에 규정되지 않고 소위 '꼰대('자기는 항상 옳고 남은 늘 틀렸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영국 BBC에서 정의함)'와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변성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성찰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중년의 삶을 '모험을 디자인하는 신중년 문화예술 수업'으로 구성하여 출판한 책 '생애전환학교'는 11명의 필자를 통해 우리에게 '남은 생에 대한 나의 서사'를 위한 좋은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제1부 '창의적 전환의 삶을 위하여', 제2부 '낯선 감각, 이토록 예술적인 전환이라니!', 제3부 '끝나지 않은 전환의 실험이 남긴 것들' 등의 주제로 총 3부로 구성된 '생애전환학교'를 읽으면서 얼마 전 서울과 부산에서 있었던 시장 보궐선거가 떠올랐다. 선거 결과에 대해 여러 전문가의 청년층과 중·장년층에 대한 세대 해석이 분분했었다. 그런데 나는 '나이 든 자'가 현명하게 산다면, '나이 어린 자'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네 탓', '내 탓'을 가리는 것보다 청년, 중·장년, 노년 등 저마다의 '생애전환시기'를 맞이할 때마다 개인의 존엄을 지닌 '주체'로서 서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