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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3 성남 대성기름집] '참기름 맛집', 모란시장 맛의 비법은?

배재흥 배재흥 기자 입력 2021-05-27 19:40:03

집집 마다 다른 김치 맛처럼 참기름 맛도 다 달라
젊은 손님 거의 오지 않아… 인터넷 홍보, 판매 고민
좋은 깨로 만든 기름, 최상의 서비스… "많이 찾아 주길"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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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에 선 대성기름집 대표 박정수씨. 2021.5.21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모란시장은 수도권 전통시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이죠. 모란시장은 향토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개 도축'과 관련한 갈등이 몇 년 전까지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성남시는 지난 2017년 정책연구보고서를 발간 했는데요. 연구진이 2012~2017년 9월 말까지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모란시장의 연관어는 '개고기', '도축장' 등으로 대부분 개와 관련한 부정적인 이미지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모란시장의 개 도축시설은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란시장은 좋든 싫든 한때 '가축 시장'으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이와 함께 모란시장을 대표했던 품목은 '기름'입니다. 양질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짤 수 있는 '기름 시장'의 명성도 가축 시장 못지않은 데요. 1990년대 말께 모란시장 내 기름집은 무려 50여 곳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점포 수가 조금 줄어 38곳의 기름집이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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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활짝 웃는 박정수씨. 2021.5.21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기름 맛과 김치 맛
박정수(52)씨는 지난 1988년 문을 연 '대성기름집'의 2대 대표입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부모님에게 가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정수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합니다. 아들은 작업복 대신 양복을 입고 출퇴근 하길 바랐던 것이죠.

"그때는 이 일이 좀 더 자유롭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다니는 것보다 벌이도 나았고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식이 번듯하게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출퇴근하면서 직장 생활하길 바라죠. 옛날 분들은 그게 더 심했어요. 당시에는 아버지께 많이 혼났죠."

그로부터 어느새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정수씨 부부의 노력으로 대성기름집의 기름은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성남시와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한 것이지요.

정수씨에게 대성기름집만의 '기름 맛' 비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 무딘 감각으로는 기름의 맛과 향이 특별하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정수씨는 '김치 맛'을 예로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습니다.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잖아요. 기름도 김치 맛처럼 약간씩 달라요. 어떤 깨를 쓰느냐, 깨를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거든요. 한 동네에 사는 이웃주민 두 분이 기름을 짜러 오세요. 한 분은 저희 집에서 기름을 짜고, 다른 한 분은 안쪽 집에서 기름을 짜요. 같이 차를 타고 와서 기름을 짜는 곳만 다른 거죠.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먹는 사람은 맛의 차이를 느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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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전경. 2021.5.21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모란시장 기름집의 미래는?
모란시장의 기름집들은 '상생'하는 사이입니다. 기름집이 여러 곳 몰려있다 보니 양질의 깨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선의의 경쟁도 펼칩니다. 맛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은 물론, 기름집 주인들이 손님을 응대하는 말투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네요.

"모란시장의 기름 맛과 향이 다른 곳보다 좀 더 나아요. 기본적으로 기름집이 38곳 있으니까 깨를 구매하기 쉽고, 가격 경쟁력도 있죠. 특히, 손님들께 잘할 수밖에 없어요. 주인이 한 번 틱 거리면 손님들은 '어? 그래 알았어' 하고 바로 옆집에 가면 되니까요."

그러나 고민거리도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기름집이 있는 곳이 전통시장이잖아요. 지금은 어머니가 시장에 와서 기름을 사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있지만, 이후에는 '그 자식들이 모란시장에 와서 기름을 사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이곳 기름집들도 인터넷 판매나 홍보 방법 등을 알아보고 있어요. 다들 그쪽으로(젊은 손님을 유인 할 수 있는 방법) 많이 고민하고 있는 거죠."

정수씨는 슬하에 두 아들을 뒀습니다. 큰아들은 기름집 대를 잇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대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은 가게를 이어받겠다고 했다네요. 그는 아들에게 "싫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이 일이 고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대를 잇겠다는 아들의 의사를 반대하지 않는 건 지난 세월 그가 느낀 보람과 행복 덕분일 겁니다.

대성기름집이 있는 모란시장 골목에 가면 기분 좋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정작 정수씨는 하루에 기름 냄새를 두 번 맡는다고 합니다. 가게 문을 열 때 한 번, 퇴근 후 옷을 갈아입을 때 한 번. 계속 맡다 보니 무슨 향이 나는지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른 기름집 주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란시장 기름집 모두가 손님들에게 맛있는 기름을 대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저희 집 뿐만 아니라, 모란시장에 있는 기름집들 다 좋은 깨 쓰고, 손님들한테 박하게 대하지도 않으니까 많이 찾아주면 고맙겠습니다."

*대성기름집 주소: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83번길 7.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일요일 휴무/장날이면 정상영업). 전화번호: 031)754-2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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