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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 호소했었다'… 동료 증언으로 드러난 네이버 직원 비극적 선택 이면

신현정 신현정 기자 입력 2021-06-07 16:11:58

노조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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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은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5일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2021.6.7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임원 A가 자기(고인 B씨)를 거치지 않고 팀 멤버들을 직접 매니징(관리)하여 최근 퇴사한 사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인력 부족으로 충원해도 모자랄 판에 팀원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2020년 11월 18일)

'두 달짜리 업무가 매일 떨어지고 있어서 매니징하기 어렵다'(2021년 1월 28일)

'임원 A와 미팅할 때마다 자신(고인 B씨)이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2021년 3월 26일)

지난달 25일 네이버 사원 B(40대)씨가 성남시 분당구 소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곁에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가 남겨졌다. B씨가 비극적 선택을 하기까지 평소 동료들에게도 특정 임원 탓에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되는 임원 A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모욕적 언행에 괴로웠고, 이를 해결하고자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는 숨을 거두기 2개월 전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나?' 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같은 B씨의 업무 환경은 함께 일한 동료들의 증언으로 속속 밝혀졌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이하 공동성명)은 7일 B씨 죽음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B씨의 사망은 회사가 지시하고 회사가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강조했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공동성명 자체 조사 결과를 보면, B씨는 과도한 업무와 상급자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업무지시, 모욕적인 언행과 더불어 2년여 동안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이를 묵살한 회사의 무책임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상급자 임원 A는 B씨의 업무를 평가하는 주체이자 연봉 인상과 인센티브 제공, 보직·해임 등 전반적인 인사권한을 쥐고 B씨를 옭죄어온 것으로 보인다.



B씨는 휴게 시간 1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업무가 많아졌음에도 임원 A가 직접 팀원들을 관리하면서 팀원 이탈이 반복됐지만 인력 충원은 사실상 없었다고 동료들이 증언했다. 지난해 11월 B씨는 동료에게 "업무도 과중한 상황에서 팀원을 트레이닝시키고 이제 적응할 만큼 성장시켜 놓았는데, 임원 A때문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허탈하고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상급자 지위를 이용해 임원 A가 부당한 업무를 지시하고 모욕적인 언행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게다가 또 다른 임원 C는 다른 조직에 속한 B씨에게 지난해 10월 직접 업무 지시를 한 데다 임원 A와 C 간 의견충돌이 발생하자 이 문제를 B씨에 전가하며 누구의 지시를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고충도 동료들에게 토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모욕적인 언행도 나왔다. 공동성명은 "임원 A가 회의 중 종종 고인 B씨가 모욕감을 느낄 만한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면서 "특히 5월 7일 5시 회의에서 인턴의 프로젝트 주제 논의 중 고인이 의견을 제시하자 임원 A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면박을 줬다가 5분 후에는 고인의 의견과 동일한 내용의 프로젝트 과제를 진행하자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동성명은 회사 측의 방조와 무책임한 태도도 B씨의 비극적 선택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9년 1월, 2019년 5월 B씨를 포함한 팀장들이 경영진 D씨에게 임원 A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별다른 조처는 없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했던 팀장 14명 중 4명은 직위 해제되고, 또 다른 4명은 결국 퇴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에도 이해진 GIO와 한성숙 CEO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직원들이 임원 A를 시사하며 선임의 정당성을 질문했지만, 당시 인사담당자는 인사위원회가 검증한다는 등의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는 설명이다.

오세윤 공동성명 지회장은 "임원 A는 본인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 고인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면서 "직접적인 가해를 한 임원 A와 이 문제를 알고도 묵살했던 경영진 D는 이 일에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B씨의 업무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메신저 이력과 출퇴근 기록, 임원 A 메신저 기록 등을 회사 측이 보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조사 및 수사 결과 이후 노조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위 구성 ▲책임이 드러난 자에 대한 엄중 처벌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경영진의 사과 등도 촉구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분당경찰서는 지난 25일 네이버 사원 A(40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에는 업무상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직장 동료들을 상대로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변사사건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참고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아직 갑질로 입건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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