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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8 남양주 호평열쇠도장] 가족을 먹여 살린 0.5평 점포

배재흥 배재흥 기자 입력 2021-08-07 16:54:58

전북 고창서 돈 벌기 위해 아내 남겨 두고 홀로 상경
0.5평에서 시작한 열쇠 가게… 주변 텃새로 마음 고생
단칸방에서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 살아… 마음만은 편해
손님들 고맙다는 말에 '참 좋은 기술 배웠다' 뿌듯함도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찾는 사람들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늦은 밤 수상한 사람이 쫓아온다면 '경찰'을 찾을 겁니다. 불이 나거나 사고를 당하면 '소방'에 도움을 요청할 테죠. 언젠가 집 문이 열리지 않는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이땐 '열쇠 가게'를 떠올리게 되죠.

제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집 문이 열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상황에 나타난 열쇠 가게 아저씨가 어찌나 멋있던지요. 저에겐 맥가이버의 등장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오늘은 남양주시 평내동 맥가이버 김광종(64) 씨의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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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김광종 대표.20210802./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그가 칼을 품은 사연

호평열쇠도장 대표 광종 씨는 전북 고창군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원래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갔다고 합니다. 29살 광종 씨는 도망치다시피 상경했습니다. 새신랑이었던 그가 홀로 서울에 가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다행히 서울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친척이 있어 1년간 일을 배우며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아는 건 꽃뿐인데, 열쇠하고 도장 하는 사람한테만 공간을 주겠다는 거예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남양주와의 인연은 친구 덕에 맺게 되었습니다. 광종 씨는 당시 친구가 살던 금곡동에 가본 뒤 "이곳에서 꽃 장사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운이 좋게도 곧 상가 한 곳의 자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건물주가 요구한 업종은 오직 '열쇠업'이었습니다. 크기도 0.5평에 불과했죠. 그래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는 건 꽃뿐인데, 열쇠하고 도장 하는 사람한테만 공간을 주겠다는 거예요. 갈 곳이 없으니까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뭐가 되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당시 안양에서 열쇠 하는 분을 알고 있어서 그분께 15일간 일을 배우고 가게를 냈어요."

작지만 자신만의 가게를 연 광종 씨에게 시련이 닥쳐옵니다. 외지인인 그에게 텃새를 부리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죠. 근처 다른 곳에서 열쇠 가게를 운영하던 사장과 그의 지인들이었습니다. 10명쯤 되는 이들은 매일 가게 앞에 찾아와 깡패처럼 입구를 막아섰다고 하네요. 이제야 먹고 살 길이 열린 광종 씨는 겁이 났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향에 있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칼을 한 2~3일 들고 있었어요. 상대방에서 그렇게 하면 너 죽고, 나 죽자 해야겠다 싶어서요. 근데 그 무리의 대표라는 사람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에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옛 생각을 떠올리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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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찾고 있는 김광종 대표.20210802.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0.5평이 8평이 되기까지

찬 겨울 같은 역경을 겪고 나니 광종 씨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부지런함을 알아본 것인지 열쇠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즈음 고향에 있던 아내와 딸도 남양주로 올라와 마침내 한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5만원 짜리 단칸방을 얻었어요. 아내와 시골에서 낳은 딸이 올라와서 같이 살게 됐죠. 그렇게 7~8년. 나중엔 어머니도 올라오셨고요. 좁은 방에 살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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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종 대표와 작은 딸/김광종 씨 제공


34년 전, 탁자와 의자 하나씩만 놓으면 가득 찼던 0.5평 점포에서 장사를 하던 광종 씨는 이제 자기 명의의 8평짜리 점포를 가진 열쇠 가게 대표이자 임대인이 되었습니다. 공간을 나눠 3평은 열쇠 가게, 나머지 5평은 임대를 줬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빚밖에 없던 20대 청년이 0.5평 점포에서 아등바등 장사하며 결실을 맺게 된 것이죠.

"물론 계속 잘 벌었던 건 아니지만, IMF가 터졌을 때 다 죽는다고 했는데, 열쇠와 도장업은 수요가 있어서 살아남았어요. 한때는 노망이 났는지 10평짜리 가게를 차린 적도 있는데, 다 까먹어 버렸어요. 굳이 크게 할 필요가 없는데, 제가 욕심을 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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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답하는 김광종 대표.20210802.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참 좋은 기술 배웠다'고 알아주는 분도 계셔서 뿌듯하죠

그의 인생에 '열쇠'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지난 세월 그가 느꼈을 '간절함'이 보였습니다.


"남들한테 대우받는 직업은 아니에요. 천한 직업이에요. 저는 천한 직업이 됐든 뭐가 됐든 돈이나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래도 때로는 제가 출장 가서 문제를 해결해주면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요. '참 좋은 기술 배웠다'고 알아주는 분도 계셔서 뿌듯하죠."

광종 씨는 끝으로 손님들에게 '신뢰'를 약속했습니다.

"잠금장치를 설치하거나, 잠긴 문을 열 때 저는 손님들에게 항상 돈이 적게 들어가는 방법을 말씀드려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데도, 장치를 다 뜯어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믿고 찾아오시는 분들께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호평열쇠도장 주소: 남양주시 경춘로1256번길 25 1층 118호. 영업시간: 오전 9시~저녁 8시. 전화번호: 031)591-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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