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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시민운동 1세대' 정하영이 집에서 뛰쳐나간 이유는?

김우성 김우성 기자 입력 2022-05-15 21:42:36

지인들이 말하는 '김포시장 후보 그는 어떤 사람인가'

공보물에는 없는 '시크릿스토리'를 들려드립니다.
시장 후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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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아내 방혜란·모친 임영순 여사는 정하영 후보가 험로를 걸을 때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준 버팀목이다. /정하영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보수 정서가 지배하던 김포에서
시민운동 한다고 손가락질받던 손자가
시장에 도전한다는 걸 할아버님이 아시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더불어민주당 정하영(59) 김포시장 후보는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캠프 구성원이 거의 바뀌지 않는다. 짧게는 6~7년, 길게는 십수 년을 함께한 동지들이다.

민주화 투쟁의 바람이 일던 1980년대 정하영 후보는 김포에서 처음 지역운동이라는 걸 시작했다. 영호남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역운동이 활성화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집안의 4대 독자였던 정하영 후보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서울로 일찍이 유학을 떠나 중고교를 다닌 그는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병역의무를 마쳤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이 지금만큼 어렵지 않던 시절, 정하영 후보는 사회 문제에 눈을 뜨고 평범한 삶을 뿌리쳤다. 조부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계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당시의 농사는 고된 직업이었다. 식량주권의 중요성이 막 부각하던 무렵 청년 정하영은 흙을 일구며 다양한 부조리를 마주했고, 수세(농업용수 사용료) 폐지운동 등 사회운동에 뛰어든다.

4대 독자 '집안의 기대' 한몸에 받았던 정하영
이른 나이 아버지 여의고 조부모 사랑 속 성장
사회 문제에 눈을 뜨고 '평범한 삶'을 뿌리치자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취급했고
'그럴거면 나가라' 할아버지 말에 정말 집 나가

지난 11일 만난 캠프 동지들은 "정하영 후보는 '김포 시민운동 1세대'로 지역운동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라며 "당시 시민운동은 중앙집권형이었는데 정하영 등 몇몇 뜻있는 청년이 일어나 농업도시 김포의 현안과 관련한 시위가 본격적으로 태동했다"고 설명했다.



한 동지는 "정하영 후보는 80년대 중후반 우루과이라운드(다자간 무역협상), 그중에서도 수입쌀 반대를 위해 격렬히 싸우며 소위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북한을 코앞에 둔 김포는 그때만 해도 보수 초강세지역이어서 시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하니 정하영에 대한 시선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조부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얼마든지 직장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구태여 고향에 와서는 하지 말라는 농사를 하고,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신의 귀한 손자를 빨갱이 취급하니 설득을 많이 하셨다더라. 조부가 '그럴 거면 나가라'고 강수를 뒀는데 손자가 진짜로 집을 나가는 바람에 상심이 크셨다고 들었다"고 전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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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영 후보는 '김포 시민운동 1세대'로 지역운동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통한다. /정하영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결국 조부는 사회부조리를 고쳐보겠다는 손자의 끓는 피를 막지 못했고, 정하영 후보는 조부가 작고한 이후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캠프 동지들은 "조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집에 못 들어간 건 정하영 후보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믿고 투쟁하던 정하영 후보는 2000년대 들어 한계에 직면한다. 각종 사회부조리의 이면에 제도적 문제가 컸다고 판단한 그는 2010년 무소속으로 김포시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하지만 정하영 후보가 출마한 북부권 5개읍면 지역구는 직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3석을 휩쓸 만큼 사지와 같은 곳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건 특히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었다. 정당 추천이 생긴 이래 김포에서 무소속 당선은 정하영 후보가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록돼 있다.
조부가 작고하고 나서야 집에 들어온 정하영
사회부조리 이면에 제도적 문제 컸다고 판단
2010년 무소속으로 시의원 출마해 기적 일궈
정당 추천 생긴 이래 전무후무한 사례로 남아
정하영 후보의 가장 큰 정치적 동반자인 송태용(63)씨는 "참 어려운 선거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정하영 후보는 낮에 선거운동 끝나면 귀가해서 농사 거들고, 원룸건물 2층 사무실에서 자정 넘어서까지 선거운동 준비를 했다. 주위에서 출마 왜 하느냐고 냉소할 정도였는데 당선이 된 것"이라며 뿌듯해 했다.

송씨는 "정하영 후보는 여전히 매일 새벽 2시까지 할 일을 끝내고 잠을 청하는 사람"이라며 "청렴하고 대쪽같은 성격을 옆에서 계속 봐왔기 때문에 내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하영의 최대 강점은
상대방의 말을 허투루 흘려넘기지 않고
경청한다는 것이다
캠프 다른 동지는 "2016년 총선에 출마할 때도 상황이 비슷했다. 보수의 아성인 북부권이고, 조직이 탄탄했던 것도 아니어서 주변에서 뜯어말렸는데 어려운 싸움이 될 게 뻔하더라도 부딪혀보겠다더라"고 일화를 꺼냈다.

이어 "정하영의 최대 강점은 상대방의 말을 허투루 흘려넘기지 않고 경청한다는 것이다. 업무적으로는 딱딱해 보일 수 있으나 돌아서면 굉장히 인간적이고 겸손하다"며 "배려심도 많아서 시의원 때를 돌이켜보면 회의장에서 상대방에게 면박을 주는 게 아니라 대안을 갖고 제안하는 형태로 늘 접근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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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영 후보의 조부는 4대 독자로 대학까지 나온 손자가 남들처럼 직장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길 원했다. /정하영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그의 조부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기특해 하셨겠느냐
정하영 후보에 대한 칭찬은 실무에서 그를 겪어본 이들로부터도 전해진다.

김포 원도심 문화운동을 주도하는 사회적기업 '어웨이크' 여운태(40) 대표는 "행사 일을 하다 보면 선출직 공무원들이 와서 인사하고 가는 걸 주최 측이 당연히 배려해야 하는 것처럼 된 적이 많다"며 "정하영 시장은 두 시간이 넘는 청년 포럼과 회의 등에서 자리를 뜬 경우를 본 적이 없고 끝까지 앉아서 답변했다. 그런 태도에서 기대감이 든다"고 했다.

책방 '꿈틀' 이숙희(43·여) 대표는 "동네책방들이 협동조합을 조직해 정하영 시장과 첫 면담을 했던 날, 지역서점 운영의 아쉬운 점과 정책 제언 등을 쏟아냈었다"며 "다음 면담을 늦추면서까지 진심으로 우리의 말을 들어주고 내부 사정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해준 게 인상 깊었는데 공약에 세세하게 챙겨서 넣은 걸 보면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 느껴졌다"고 말했다.

캠프 동지들은 "뚝심 있게 자기 길을 간 정하영 후보가 옛날로 치면 군수가 되어 또 한 번 도전하고 있다는 걸 그의 조부가 보셨더라면 얼마나 기특해 하셨겠느냐"며 인간 정하영에 대한 소개를 마쳤다. →관련기사 (선배마저 존경심 표한 김병수 '그의 떡잎'은 어땠을까?)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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