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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사태 그 이후·(1)] 업무상 기밀 이용 공직자에 내려진 철퇴

신지영·이시은
신지영·이시은 기자 sjy@kyeongin.com
입력 2022-09-17 10:32 수정 2022-09-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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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국민의 분노와 절망을 극에 달하게 했다. 사건 이후 투기 의혹 연루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지만 일부는 법원에서 사실상 면죄부에 가까운 판정을 받았다. 사진은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LH 본사. /연합뉴스

지난해 3월 한국사회를 강타한 이른바 'LH 사태'는 극명한 명과 암을 남겼다. 바로 투기 의혹 연루자들이 법원의 철퇴를 받는가 하면 무죄 판단으로 투기 의혹에서 벗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업무상 기밀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혐의로 공직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이후, LH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물들은 경기 남부권을 투기 무대로 삼아 수원지법 산하 재판부에서 1심 재판을 받았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이른바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고인들의 판결은 유무죄 여부는 물론이고 형량까지 달랐다. 이들의 유무죄·형량을 가른 법원의 판단 근거는 무엇일까. 왜 누구에게는 법의 심판이 떨어졌으며, 더 핵심적인 의혹을 받은 누군가에겐 면죄부가 쥐어졌을까.

가장 먼저 1심 재판부의 철퇴를 맞은 건 전 경기도청 공무원 A씨다. A씨는 LH 사태의 무대였던 광명·시흥 개발 예정지가 아니라 반도체 단지가 조성되는 용인을 투기 무대로 삼았고, LH 직원 역시 아니었다. LH 사태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라는 점에서 경기도가 자체 조사를 벌이던 중 A씨의 비위가 드러난 사례다.

지난 2009년 임용돼 2019년 5월까지 도청에서 근무한 A씨는 2018년 1월 SK건설이 용인시에 산업단지 물량배정을 요청하는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사실을 파악한 뒤 용인 반도체 단지가 공식화된 2019년 2월보다 앞서 인근 토지를 매입하고 등기부등본 소유권을 이전한 혐의를 받았다.


A씨가 업무상 취득한 비밀로 가족회사 명의로 토지 매입 등의 작업을 벌였다는 점이 인정돼 지난 1월 법원은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다음 재판은 지난 7월에 선고가 이뤄진 전해철 의원의 전 보좌관 B씨다. B씨 역시 LH 직원도 아니고 광명·시흥 택지에 투기를 벌인 것도 아니지만 역시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이용했다는 게 인정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지난 2019년 4월 업무 과정에서 들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대출 2억원을 받아 아내 명의로 안산시 장상동의 토지 1천500여㎡를 3억원에 매입한 혐의를 받았다. B씨의 매입 이후 한 달 뒤 장상지구는 3기 신도시로 지정됐다.

B씨가 사들인 토지는 이후 4배 가량 시세가 뛴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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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인 용인시 원삼면 일대. /경인일보DB

A씨와 B씨는 재판 과정에서 모두 "공개된 정보를 이용했을 뿐 업무상 취득한 비밀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A씨는 2017년부터 이미 SK하이닉스의 용인 투자 사실이 암암리에 알려진 소문이었기에 용인 일대 개발을 업무상 비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B씨 역시 "안산시 장상동 일대 공공 주택 지구 지정은 비밀이 아니며 업무 처리 중 이 같은 정보를 취득한 적이 없고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토지를)매매하지 않았다"고 변론을 전개했다. 개발 정보가 이미 외부에 알려졌기 때문에 부패방지법 핵심 요건인 '비밀'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요지였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들이 수행한 업무에 주목했다. A씨에 대해 재판부는 A씨가 경기도청에서 개발 계획 자료 수집·검토·입지분석·기업 의사 조율 등의 역할을 맡았다는 점, A씨가 매입한 4개 필지가 개발구역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최근접지라는 것에 무게를 뒀다. 시중 알려진 정보나 우연으로 매입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B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1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공주택지구 지정 등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 안산시 공무원들과 회의를 하는 과정에 알게 된 개발 정보를 이용, 배우자 이름으로 토지를 취득했다"고 적시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업무를 수행하며 공무원과 회의를 할 수 있는 배타적 권한이 있었기에 '업무상 비밀'을 취득했다는 판단이었다.

안양시의회 의원을 지낸 C씨도 마찬가지 경우다. 안양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을 맡았던 C씨는 지난 2017년 월곶~판교선 복선전철 역사 신설계획이 공개되기 전 가족과 함께 안양 석수동에 2층 짜리 주택과 부동산을 매입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 8월 1심 선고심에서 법원은 "피고인들은 당시 (월판선) 신설역 관련 정보는 널리 알려진 정보라고 주장하지만, 당시 알려진 정보는 구체성, 확실성, 신뢰성 등 측면에서 공직자인 A씨가 알 수 있었던 정보와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명시했다. C씨가 시의원으로서 접한 정보의 성격(구체성·확실성·신뢰성)이 '비밀'이라고 볼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C씨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에 처해졌고, A·B씨는 동일하게 징역 1년6월이었다. 이들이 업무상 비밀로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했음에도 이런 형량이 나온 것은 이미 경제적 이득에 해당하는 재산을 몰수처분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각 토지를 몰수해 범행으로 인한 이익이 남지 않게 됐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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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이 'LH임직원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와 관련해 LH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9일 오전 경기 광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광명시흥사업본부 앞에서 취재진이 취재를 하고 있다. 2021.3.9 /김도우기자 pizza@kyeongnin.com

LH 사태와 직접 연관된 인물은 앞서 언급한 A·B·C씨와 달리 오히려 무죄를 선고 받았다. A·B·C씨는 광명·시흥 개발 예정지를 대상으로 한 투기가 아니라 LH 사태의 원인인 '업무상 비밀'을 이용한 투기로 처벌 받았지만,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재판을 받은 전 LH 직원 D씨·E씨는 사태를 촉발한 무대에서 투기 행위를 벌인 혐의를 받았다.


이 중 이른바 '강사장'으로 불린 D씨는 개발 예정지인 시흥시 과림동에 22억원 이상을 투자해 LH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LH 사태 당시 LH인천지역본부에서 가로정비사업을 담당한 E씨는 업무파악을 위한 목적이라며 광명·시흥사업본부 담당자로부터 자료를 받아 D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시흥시 과림동 5천25㎡ 토지를 매입한 뒤 180∼190㎝ 크기의 왕버들 나무를 심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기소 당시 기준으로 이들이 매입한 토지 가격을 38억여원으로 책정했다. 앞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A씨가 가족 법인 명의로 5억원·장모 명의로 1억3천만원에 토지를 매수했고, B씨는 3억원에 토지를 매입했으니 단순 매입 가격을 기준으로 D·E씨의 투기 의혹 규모는 더 컸던 셈이다.

그런데도 법원이 이들의 투기 의혹 행위에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판결문에서 법원은 "(D씨 등)피고인 등이 대외비 정보를 공유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검찰이 특정한 정보의 가치도 크지 않아 이들이 공소사실에 특정된 정보를 이용해 토지 매수 의사를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취득한 정보가 '비밀'이었는지와 이들이 취득한 정보(특정된 정보)가 실제 토지 매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이었던 것이다. →2편에 계속([LH 사태 그 이후·(2)] 핵심 '강사장'은 어떻게 면죄부를 받게 됐나)


/신지영·이시은 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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