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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인천시 총괄건축가 이상림 공간그룹 대표

김명래
김명래 기자 problema@kyeongin.com
입력 2023-10-03 19:49 수정 2024-02-06 14:19

"내 관점은 '천천히' 점진적 변화…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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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전인 지난달 21일 오후 송도 투모로우시티에서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를 인터뷰했다. 그는 조화와 균형 감각을 갖춘 조정자로서의 건축가 역할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인천시 총괄건축가 이상림(68) 공간그룹 대표를 최근 송도국제도시 건축물 '투모로우시티'에서 만났다.

투모로우시티는 이상림 건축가의 설계작품이다. '미래 도시 송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기획·설계·건축됐다. 2009년 인천시 건축상(최우수상)을 수상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정작 이 건물은 지금껏 본래 용도대로 쓰인 적이 거의 없다.

투모로우시티 프로젝트는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 개막을 앞두고 급하게 진행돼 설계·시공 기간이 짧았다. 국내 한 대기업이 장래 개발이익의 대가로 먼저 투모로우시티를 지어 인천시에 넘기기로 했지만 그게 잘 안돼 인천시와 긴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랜 기간 인천시는 건축주이면서도 건축주가 아닌 어정쩡한 지위에서 투모로우시티를 바라만 봐야 했다.

이상림 총괄건축가는 "공사 기간도, 예산도 충분하지 않고 여러 가지가 잘 안 맞았다"면서도 "설계 건축물을 구현하는데 꽤 난도가 높았는데 이렇게라도 잘 마무리된 것에 고마운 마음이 있다"고 했다.



투모로우시티는 인천스타트업파크로 탈바꿈 중이다. 환승센터 기능을 갖춘 유비쿼터스 공간으로 설계된 투모로우시티의 '구조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 인천시는 투모로우시티 증축을 추진하는데, 그 안건을 심의해 원안대로 통과시킨 당사자가 이상림 총괄건축가였던 것이 아이러니다. 자신의 작품에 '칼질'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축가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했다.

"안타깝죠. 그런데 환승센터 통로를 지금 쓰지 않고 있잖아요. 에스컬레이터도 있는데, 사람이 많이 안 오니까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잘해 달라'고만 얘기했습니다. 바뀐 용도에 잘 맞춰 가는 게 결국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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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총괄건축가는 인천시건축기본조례에 따라 건축 정책, 도시 디자인 정책, 공공 건축물 기획·발주·설계를 조정하고 자문한다. 총괄건축가가 도시건축계획 입안자는 아니어서 그 권한에 한계가 있지만, 총괄건축가가 반대하는 사업은 인천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그의 관점은 간명했다.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였다. "제가 몇 년 전 멕시코에서 이런 인터뷰를 했어요.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빨리 따라가고 싶다기에 '우리가 지나고 보니 잘한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많았다'고 답하면서 점진적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했어요. 불편한 점은 개선하고, 위험한 것은 보완해 나가면 됩니다.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그는 인천의 신·구도심 격차현상도 다른 지역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도시 개발) 사이클은 생각보다 길고, 지금 현재 모습은 앞으로도 상승과 하강 국면을 더 겪을 것"이라며 "인천은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고려할 때) 가장 잘 발전해 나가고 있는 도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설계작품 투모로우시티 '구조변경' 인천스타트업파크로 탈바꿈
남극 장보고기지·강화 바람숲도서관 프로젝트 가장 기억에 남아
조화·협력의 가치 중시… 건축이란 건축주·땅이 원하는 바 실현


총괄건축가의 심의·자문 기준은 '공공성'이다. 건축물의 공공성은 '콘텍스트'(맥락)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이상림 총괄건축가 지론이다. 예를 들어 인천시가 인천 내항 쪽에 하버파크호텔을 세우면서 자유공원에 오른 시민의 조망이 가려졌는데, 이는 콘텍스트를 고민하지 않은 결과다.

"우리는 어떤 계획을 세울 때 항상 옆집과의 관계, 콘텍스트를 봐야 합니다. 좋은 뷰(view)를 얻기 위해 높이 올리고 싶어도, 그로 인해 옆집의 뷰를 가린다면 건축물을 살짝 틀어준다든지, 그러면서 모든 걸 차지하려 하지 않고 조금 적게 가지는 것이죠. 공공성은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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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림 총괄건축가는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공간그룹에 입사했다. 김수근, 장세양 건축가의 뒤를 이어 1996년부터 공간그룹 대표를 맡고 있다. 40여 년 동안 국내외 여러 도시를 경험하고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그는 '남극 장보고기지'와 '강화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내세운다. 장보고기지는 건축가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남극에서 건축이 가능한 여름철 60일의 시한을 맞추기 위해 한 치의 오차 없는 사전 시뮬레이션이 중요했다.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재능 기부' 형식으로 설계했다. 이 기획에 함께 참여한 공간그룹 양남철 소장은 설계가 완성된 이후에도 경기 김포 집에서 강화도를 시도 때도 없이 오갈 정도로 큰 애정을 갖고 작업했다고 한다.

공간그룹의 설계가 아닌 것 중에 인천에서 그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건축물은 송도 트라이볼이다. 트라이볼은 실제 모습보다 '사진'이 더 유명해 막상 와서 보면 실망하는 이가 많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지점에서 다른 건축물과 차별화된다.

이상림 총괄건축가는 그간 인터뷰에서 건축을 "건축주와 땅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여전히 조화와 협력의 가치를 중시한다.

"건축주들이 오래전에는 정말 무식했어요. 그래서 건축가들은 건축주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건축주와 건축가가 파트너십을 형성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야 서로가 좋아져요. 이 사실을 건축주뿐 아니라 건축가들도 알아야 해요. 서로 신뢰를 쌓아가야 무엇인가를 만들어갈 수 있어요. 정말 만나기 힘든 세계적인 건축의 대가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하나같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가능한 성과였다'고 해요. 경력이 쌓여도 버르장머리 없는 건축가들은 오래 못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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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림 총괄건축가는 "건축은 자연과 사회와의 공감"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원전 1세기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내세운 개념인 '건축의 3요소' 견고함, 유용성, 아름다움을 자주 인용한다. 그는 "튼튼하게 만들고, 잘 쓰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 세 가지를 건축가뿐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지켜나가면 이 사회가 바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이상림 인천시 총괄건축가는?

▲1955년 출생
▲대구중앙초, 서울중, 서울고,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원 석사. 한양대 건축공학과 박사
▲現 공간그룹 대표건축가, 現 인천시 총괄건축가, 現 서울시 공공건축가, 前 한국건축단체연합(FIKA) 회장, 前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주요 작품 : 진주시 신안동 복합스포츠타운 설계공모 당선, 세종시 정부청사 3단계 2구역, 사비나 미술관, 모로코 카사블랑카 스타디움, 4·3평화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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