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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줌머인 인권운동가는 어떻게 '김포 이씨' 시조가 되었나

김우성
김우성 기자 wskim@kyeongin.com
입력 2023-10-09 13:30 수정 2024-02-06 16:01

난민생활·투쟁사 담긴 '치타콩 언덕 바르기…' 출간한 이나니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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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방문객들에게 친필 사인을 해주는 이나니 팀장.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방글라데시 치타콩 산악지대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한 이나니(52·로넬 차크마 나니)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상담팀장이 난민생활과 과거 투쟁사를 써내려간 '치타콩 언덕 바르기, 한국을 날다'를 출간했다.

난민과 이주민들의 인권운동가로 활발하게 살아온 그는 지난 7일 김포아트빌리지에서 출판기념 북콘서트를 열어 책을 펴낸 소회를 밝혔다. 이 책의 집필은 시민운동가인 권미영 작가가 맡았다. 과장됨 없이, 이나니 팀장 내면의 고민까지 섬세하게 풀어낸 권 작가는 북콘서트 단상에 함께 올랐다.

이나니 팀장은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의 0.7%에 못 미치는 소수민족 줌머(Jumma)인이다. 치타콩 산악지대에 주로 분포하는 줌머인은 최대 종족 벵갈인들의 인종·종교차별과 재산약탈에 맞서 자치권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반정부 운동 참여하다 3년간 투옥되기도
이후 스님으로 변장해 1994년 한국 도착
재한줌머인연대 창설 '현지 인권침해' 알려
아들은 대한민국 지키는 육군 장교로 성장
"차별 없는 세상 만드는 인권운동가이고자…"
이 팀장은 고교 때부터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다가 1986년 체포돼 3년간 투옥됐다. 출소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정보기관이 늘 따라붙었다. 이후 스님으로 변장해 인도와 라오스, 태국을 거쳐 1994년 한국에 왔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1998년, 게릴라군과 방글라데시 정부군 간 평화협상이 체결되자 희망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정부의 계속된 탄압에 다시 한국으로 피신했다.



2002년 '재한줌머인연대'를 창설한 그는 줌머인을 도우면서 현지에서의 인권 침해를 한국에 알렸다. 줌머인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방글라데시대사관 앞 시위를 벌이고 인권 강연도 다녔다.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은 2003년 한국에 왔다. 이듬해 정부는 이들 가족 모두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이 팀장은 '김포 이씨' 시조로 2011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아들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육군 장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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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콩 언덕 바르기, 한국을 날다'를 펴낸 이나니 팀장과 권미영(왼쪽) 작가가 북콘서트에서 객석과 대화하고 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책은 이 팀장이 한국에 자리 잡는 과정뿐 아니라 그 이전 탄압에 저항하던 시절의 기록도 다뤘다. 치타콩 선주민(원주민) 차별의 역사를 17세기부터 정리해놓는 등 줌머인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았다.

이나니 팀장은 "나는 벵골인을 미워한 게 아니라, 선주민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글라데시 헌법과 극단적인 벵골민족주의·종교근본주의와 싸운 것"이라며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 연대활동을 하면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인권운동가이고자 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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