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조국수호에 한마음 '그때처럼'… 역사보존에 합심을 '다시한번'

입력 2023-12-04 20:46

[끝나지않은 전쟁, 아픔딛고 미래로·(24)] 평화문화공간 필요한 '춘천대첩'


1978년 의암호 인근 '전적기념관' 조성… 1981년 강원도 양여
"2차원 전시물 위주" 콘텐츠 부족 지적… '건립추진위' 구성
지난 6월 범시민대회… "자긍심 느낄 공간 새롭게 만들어야"
민간 중심 움직임 활발한데 수백억 예산탓 지자체는 소극적


2023120501000057300002743

'북한이 대패를 인정한 유일한 전투' '병력 열세를 딛고 대한민국을 지킨 3일간의 방어전' '군인·시민·학생이 합심해 거둔 승리'

6·25 전쟁 발발 초기 벌어진 춘천지구 전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들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국군 제6사단이 북한군 제2군단에 맞서 전개한 방어전투는 '춘천대첩'으로 불린다. 하지만 춘천대첩을 기념하는 공간은 춘천에 초라하게 남아있다. 의암호 인근에 1978년 조성된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이다.

기념관 입구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연도순시 시 국가안보의식, 향토방위의식 고취를 위해 설립을 지시했고 친필로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의 명판으로 써 주심으로 동년 11월 28일 설립되었다"고 쓰여있다.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자치도)가 1981년 교통부로부터 이 건물을 무상 양여 받았고, 한국자유총연맹이 위탁 운영 중이다. 강원자치도가 지원하는 연간 예산은 관리인 인건비, 공과금, 소규모 수리비로 1억여원 정도. 이 곳에서 열리는 춘천대첩 기념행사도 없어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열악하다.

2019년 연간 방문객은 13만3천805명이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시기에 급감해 지난해에는 6만9천369명이었고 올 상반기에는 1만7천260명에 그쳤다. 춘천대첩에 학도병으로 참전했거나, 춘천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후대에 알리길 열망하는 지역 원로들은 '춘천대첩 평화문화 기념관' 건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올해 정전 70주년을 맞아 시작된 일이다.

2023120501000057300002741
육군 2군단과 춘천시가 매년 6월에 개최하는 춘천지구전투 전승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춘천대첩 재현 행사.

■ '민·관·군 합심의 역사' 후대에 전해야


=지난달 28일,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에서 만난 진성균(90) 6·25참전유공자회 강원도지부장. 춘천대첩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그는 제1·2전시실의 전시물을 하나씩 볼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먼지가 쌓인 옥산포 전투 조형물, 당시 썼던 녹슨 무기들, 색이 바랜 춘천지구 전투 설명판 등이 전부였지만 기억은 생생했다. 열정적으로 전쟁 상황을 말하던 그는 "그런데 이것만으로 누가 춘천대첩을 보고 느끼겠는가"라며 안타까워 했다.

병력면에서 4배, 화력면에서 10배 우세했던 북한군에 맞선 국군의 치열함, 주먹밥을 만들고 포탄을 날랐던 제사공장 여공들과 학도병들의 절박함을 느끼기에는 '빛 바랜 설명판 몇 점'은 역부족이었다. 진성균 지부장과 함께 방문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육사 35기 출신인 김일환 무공수훈자회 강원도지부장은 "춘천대첩의 핵심은 군인뿐만 아니라 경찰, 민간이 합심해 대한민국을 지켰다는 사실"이라며 "전적기념관으로는 이 정신을 담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30대인 강대규 변호사는 "3차원을 넘어 4차원 시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2차원 전시물 위주의 기념관"이라며 "청소년들도 전쟁의 실상과 평화의 중요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체험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올해 구성된 춘천대첩 평화문화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의 위원들로 활동 중이다. 진성균 지부장은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진 위원장은 "마음의 숙제로 남은 숙원사업"이라고 말했다.

2023120501000057300002742
지난 6월 29일 춘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춘천대첩평화문화 기념관 건립 범시민대회'.

■ 관(官)은 소극적일 때 민(民)이 먼저 나서


=춘천대첩 평화문화기념관 건립 추진 사업은 올해 철저하게 민간 중심으로 시작됐다. 지난 6월 29일 춘천대첩평화문화기념관 건립 범시민대회가 춘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기조 강연을 맡은 한광석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는 "21세기는 생태계가 붕괴되고, 기술혁신으로 인간성이 위협받으며, 핵 전쟁 가능성으로 국제 평화가 흔들리는 시대"라며 "춘천대첩 평화문화 기념관은 이런 시대에 메시지를 주는 공간으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범시민대회에는 춘천대첩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언론계 원로인 박기병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장, 김선배 전 춘천교대 총장, 김미영 전 강원도경제부지사 등 170여명이 참석했다. 김미영 전 부지사는 "시민들이 춘천대첩의 의미를 알고,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민방위 교육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립비로 수 백억원의 예산이 드는 사업에 지자체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박철호 강원대 명예교수는 "춘천대첩 기념관 건립 추진 운동은 민간에서 시작됐지만,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며 "민·관·군이 다시 한번 합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 [인터뷰]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몽골 침입때부터 활약한 봉의산, 국가평화의 기록 고스란히 담겨"

'민항기 불시착' 한중 수교 계기… "정부 나서서 조성을"


허준구(사진) 춘천학연구소장은 춘천대첩의 지휘소가 있던 봉의산(鳳儀山)을 "강원도를 넘어 국가 위기와 평화의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평가했다.

허 소장은 "봉의산 중턱에는 '봉의산 순의비'가 있는데, 1253년 몽골이 침입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봉의산성'에 모여 한 명도 살아남지 않을 정도로 결사항전했던 2천여명의 주민들을 기리는 공간"이라며 "이를 계기로 몽골은 침략 수위를 낮췄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의 희생으로 나라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봉의산 바로 아래에 있는 '근화동'은 춘천대첩의 방어선이 구축됐던 소양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에는 옛 캠프페이지 부지가 있다. 근화동의 캠프페이지는 한·중 수교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중국 민항기 춘천 불시착 사건'이 발생했던 공간이다.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 중국민항 소속 B-296 트라이던트 여객기는 승객 96명, 승무원 9명을 태우고 중국 선양을 떠나 상하이로 가다 공중 납치됐고, 연료가 모자라 춘천 캠프페이지에 불시착했다. 중국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해 한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 비공식 교섭 채널이 개설됐고 교류를 하나씩 넓혀 나가 1992년 수교를 맺었다. 허 소장은 "봉의산을 중심으로 한 소양강 주변은 춘천대첩의 격전지이자, 국가 평화의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춘천에 왜 평화문화 기념관이 조성돼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들로 보았다.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은 "춘천이나 강원도뿐만 아니라 국가의 평화를 좌우했던 공간인 만큼, 기념관 조성 사업이 추진된다면 국가적인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며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강원일보=신하림기자, 사진/강원일보 제공

한신협_로고


2023120501000057300002746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