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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중우정치와 정치적 역량

입력 2024-01-07 20:44

주가조작 특검에 사실 호도한 자세
대통령 신년사는 자기모순적 발언
사회 퇴보… 지성인 침묵·언론 동조
시민의 정치적 역량 민주주의 좌우
허상·거짓 물리칠 '국민 참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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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늘상 맞이하는 새해지만 올해처럼 아무런 감흥도 없이 어둡게 출발한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라면 시간이 갈수록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줄어든 탓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끝도 없이 추락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문제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원래 허약한 정치체제이며,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치적 이해력 및 참여도에 따라 그 수준이 극명하게 차이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와 정치는 너무도 급격하게 퇴보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칙과 공정성이 무너진 정치현실은 해방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그에 따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범과 정당성이 파괴되고 중우정치에 빠지고 있다. 이를 비판하고 사회적 지향성을 말해야할 지성인들은 냉소와 침묵에 빠져있다. 주류 언론은 심지어 정파적 이익에 따라 사실을 호도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적이 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특검에 대해 쏟아내는 말들을 보라. 거기에는 어떤 합리성도 없이 오히려 시민을 우롱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태도만이 흘러넘친다. 혐의 사실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그런데 "총선용 악법"이라거나,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발언은 모멸감을 느낄 정도다. 그럴수록 사실을 명백히 밝혀내는 것이 당연한 대응이 아닌가. 왜 거부하는가?

대통령의 신년사는 또 어떠한가. 한 사회의 현재를 분석하고, 이 사회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토대로 그 해의 정치적 방향을 설명하는 시간에 자기모순적 발언을 너무도 태연하게 내뱉는다.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이 정권이 그동안 행해온 정치 현실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 있다. 주류 언론은 또 어떠한가. 그들의 행태 어디에도 민주주의를 생각하거나, 사회적 공정성과 합리성을 지켜내려는 생각이 없다. 오직 정파적 이해 관계나 그들이 가진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거짓만이 난무한다. 이것이 나만의 착각인가.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으로 선택받지 못했지만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이며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적 테러를 보도하는 행태를 보라. 부산에서 서울로의 이송이나, 이제껏 침묵하던 지방의료 수준 따위의 헛 논의로 그 정치적 함의를 어떻게든 가리려 한다. 그러니 혐의만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태에 적극 나서지 않는가. 고 이선균 배우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는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혐의 사실을 흘린 수사기관이나 그 뒤의 정치적 의도 이전에 이를 보도하는 행태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아니란 말인가. 한국 언론은 죽었다. 언론에 이런 말을 하다니 역설적이지만 지금과 같은 행태를 바꾸지 않으면 언론은 쓰레기라는 표현을 넘어 이 사회의 공적이 될 것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급격히 파괴되고 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이 사회의 해체는 현실이 될 것이다. 정권을 장악한 정치는 사사로운 이익과 자파 권력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 맹목과 사익 추구, 그 연성 독재를 비판해야할 언론은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민을 호도한다. 이를 지켜야할 법조계와 관료 집단은 더 적극적으로 이런 행태에 가담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를 개탄하는 수많은 언론인, 관료, 법조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시민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그런만큼 시민의 정치적 이해와 참여도가 낮을 때 민주주의는 중우정치가 될 위험이 너무도 농후한 체제이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은 민주주의를 최악의 정치체제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역사 이래 민주주의만큼 시민의 권리를 보장한 정치체제도 없었다. 관건은 시민의 정치적 이해와 참여, 정치적 역량에 달려있다. 괴롭더라도 현실 정치의 허상과 맹목, 거짓을 밝혀내고 이를 물리칠 시민적 참여가 절실하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그들의 말처럼 "국민은 개 돼지"가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있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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