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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불황형 소비

강희
강희 hikang@kyeongin.com
입력 2024-05-28 20:05 수정 2024-05-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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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모를 불경기와 미친 물가에 천원의 무게는 새털보다 가벼워졌다. 불황기에도 사람들은 기분을 소비한다. 소액으로 누리는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건, 지갑은 얇아져도 '스몰 럭셔리'로라도 자존감을 지키려는 심리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립스틱, 매니큐어, 넥타이 등 '작은 사치품'이 많이 팔리는 이유다.

생활용품 천원숍의 원조 '다이소'가 가성비 화장품으로 매출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10월 론칭해 2주 만에 동난 '리들샷'의 바통을 '샤넬 저렴이'로 불리는 립밤이 이어받았다. 주름개선 레티놀 제품도 품절 대란이다. 포장과 용기를 단순화하고 몸값을 낮춘 300여종의 제품은 금세 입소문이 났다.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으로 지하철 역사 내에 천원 빵집이 부활했다. 지난해 국내 빵 물가는 1년 전보다 9.55%나 뛰었다. 베이커리 카페와 브랜드 빵값은 부담스럽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시장을 주무른다. 저가 수요가 늘어나니 천원빵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생략한 천원빵의 박리다매 전략은 대성공이다. 맛과 품질도 브랜드 빵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알뜰 소비족은 가잼비(가성비 대비 재미)도 포기할 수 없다.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 거거익선(巨巨益善)이다. 편의점마다 대용량 트렌드를 잇는 상품들이 속출한다. 점보 팝콘, 두배 핫바 등등. 벤티 얼음컵은 양을 대폭 늘려 g당 단가를 낮췄다.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팔도 점보 도시락'과 '공간춘 쟁반짬짜면'에 이어 삼각김밥 4개를 담은 슈퍼 라지킹 삼각김밥, 곱빼기 비빔밥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불황에 공허한 마음을 실속형 대용량 제품으로 채우려는 수요에 숏폼 트렌드와 인증숏 이벤트도 한몫했다.



6월부터 외식·식품·생필품 제조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선다고 한다. 전 세계 1위를 찍은 사과 쇼핑은 언감생심인데, 이제 김과 간장도 장바구니에 담기 겁나게 생겼다. 식료품 가격 인상은 외식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짠돌이 연예인을 내세운 '절약 습관' 콘셉트 예능까지 등장했다. 방송에서 짠내 노하우라도 전수받아야 할 지경이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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