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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학파와 독서경영

입력 2024-06-2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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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프랑스 인문학의 전성기였다. 레비스트로스·미셸 푸코·들뢰즈·라캉·데리다·바르트·알튀세르·보드리야르·부르디외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프랑스에서 쏟아져 나왔다. 천재 인문학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랑제콜이라는 프랑스 특유의 엘리트 교육이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지만, 학파(school)나 세미나 같은 응집된 연구와 연구 풍토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알렉상드르 코제브(1902~1968)는 러시아 출신 철학자로 프랑스에 헤겔연구가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34~38년 그의 헤겔 강의와 세미나는 인문학의 전설로 통한다. 코제브가 진행한 '헤겔 세미나'에 수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들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의식과 주체를 탐구한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도 코제브가 진행하는 헤겔 세미나에 참여했다. 이 세미나가 라캉이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코제브의 헤겔 세미나는 다시 라캉 세미나로 이어졌다. 라캉의 후계자이자 사위였던 자크 알랭 밀레가 개설한 '라캉 세미나' 또한 '헤겔 세미나' 못지않은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다. 마르크스와 라캉을 활용한 비판이론가로 유명한 슬라보예 지젝(1949~)이 바로 '라캉 세미나'의 수혜자이면서 자크 알랭 밀레의 제자다.

지난 6~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이 극우 RN에 참패하면서 프랑스의 정치적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고물가와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난에 이민문제까지 겹치면서 대중들의 '우클릭'이 현실화한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정치인들의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와 대중들의 욕망의 정치가 결합하면서 돈을 푸는 양적 완화와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문학의 쇠퇴가 정신과 도덕성의 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는 있어도 '학파'가 없다. 학파가 없거나 약하기에 인문학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성과가 나오기 어렵고 사회적인 영향력도 약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기업, 기관을 대상으로 '2024년 독서경영 우수 직장 인증'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 독서경영 우수 직장 인증제도가 인문학 활성화를 위한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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