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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난폭해진 장마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4-06-30 19:34 수정 2024-06-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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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차갑고 습한 오호츠크해 기단과 따뜻하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 사이에 형성된 정체전선에서 발생하는 집중 강우 현상이다. 한반도에 정체전선이 걸치면 기상청은 장마전선이 상륙했다고 예보하고, 장마전선은 오르락 내리락하며 전국에 비를 뿌린다. 전선이 고착된 지역은 물폭탄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 민족에게 장마는 고마운 하늘의 보시다. 한반도 강수량의 30%가량이 장마철에 집중된다. 적당한 장맛비는 벼농사의 필수 조건이다. 논에 가둔 장맛비는 어린 모를 키우는 소중한 자양분이다. 쌀로 연명하는 민족에겐 장마철이 생명줄이었다. 그래서 돌도 키우는 장맛비이고, 가뭄의 장맛비는 다디달다.

하늘의 조화이니 인간의 뜻대로 부릴 수 없는 게 문제다. 칠년대한(七年大旱)에 비 안 오는 날 없고, 구년지수(九年之水)에 볕 안 드는 날이 없다 했다. 맞춤한 때에 적당한 기상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장맛비도 과하거나 부족하길 수시로 반복한다. 하늘의 장마 전선(前線)이 땅의 전선(戰線)으로 변하면 사람의 삶은 전쟁터가 된다.

사람 탓에 하늘이 변했다. 기후 격변의 시대에 장마도 예외가 아니다. 장마철 홍수와 가뭄의 반복은 반만년의 일상이지만, 최근 부쩍 장마의 변덕이 심해지고 심술은 흉포해졌다. 기억에는 인명을 앗아간 폭우 피해가 선명해도, 실제로는 마른 장마가 잦아졌다. 게릴라성 폭우가 관측 범위 밖에서 도깨비처럼 출몰해 간담을 서늘케 한다. 특히 장마전선이 철수한 뒤에도 국지성 기습 호우가 빈발하면서 학계에서는 '장마' 대신 '우기'(雨期)로 표기하자는 주장이 나올 지경이다.



지난 주말에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에 강풍을 동반한 호우가 쏟아졌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이번 주 내내 장마전선이 비를 뿌릴 것이란 예보다. 2020년엔 긴 장마에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고 부산 초량제1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막대한 재산과 인명피해를 남겼다. 2022년엔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지난해엔 청주 궁평지하차도 침수로 안타까운 많은 인명들이 희생됐다.

장마의 양상이 변해 대응이 난감해졌다. 1년 강수량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국지성 호우가 특히 골칫덩어리다. 평균적인 장맛비 통계에 맞춘 평상적인 대비로는 막기 힘들다. 사람이 막을 수 있는 빈틈이란 빈틈은 남김없이 막아야 한다. 인재를 되풀이하면 장마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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