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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연인] 묵념 5분 27초

권성훈 발행일 2016-05-1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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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 5분 27초

황지우(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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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소통의 방식은 소리―언어에만 있지 않다. 소리를 제거하고 난, 침묵―언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1952년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작품은 공연을 위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랐으나, 무대에서는 아무런 연주가 없었다. 객석에서 관객들의 술렁임만 감지될 뿐 무대는 4분 33초 동안 침묵과 고요만이 흘러가다 연주가 끝났다. 때로는 '침묵의 언어'―기의와, 말해야 되는 '시적 언어'―기표 사이에서 '5분 27초'라는 '고요한 묵념'만이 '진실한 소리'를 들려줄 때가 있다. 이 때 '묵념'을 수용하면서 '침묵'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나는 말할 수 없으므로 양식을 파괴한다. 아니 파괴를 양식화 한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폭력적 세계에서 상식을 깨버린 '파괴적 언어'는 일상적인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를테면 1980년 5월 27일 광주에서 계엄령이라는 비정상적인 법칙과 이에 따른 희생자들을 묵도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정보적 기능은 사라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고요함 속에서 배치되는 정적의 사태 속에서 '혼란의 진실'과 '통증의 모순'을 웅전하게 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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