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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위안부 문제, 지자체가 발벗고 나선 이유

최성 발행일 2016-09-0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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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 고양시장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들과 함께 '위안부 특별법 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고 그 힘을 토대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청원한 위안부 특별법은 대통령 소속 심의위원회 설치, 피해자 및 사망자 추도를 위한 한국 정부의 지원,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로 지정,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정부의 활동보고서 국회 제출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앞서 고양시 해외방문단은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강일출 할머니를 모시고 피켓시위를 결행하기도 했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합당한 배상,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정치쇼'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이 위안부 피해자 증언회의 소중한 가치를 폄훼하고 있으며, 특히 '20대 국회 위안부 특별법 제정 추진' 또한 자치단체장의 행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한 고양시의 노력을 '수준 낮은 분쟁'으로 비하하기까지 했다.



정치쇼라는 시각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되묻고 싶다. 오죽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나서 위안부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겠는가. 국가가 전면에 나서지 않을 때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지자체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앞서 언급한 일각에서의 비판이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부 정치인들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들에게 말이다.

개탄스럽다. 현재 생존해 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은 40명에 불과하다. 이옥선 할머니는 "우린 아직도 해방이 안 됐어요. 15살에 끌려가서 90살이 되도록 우린 전쟁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작고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어떤 말씀보다 우리들의 마음을 찔렀다. 위안소를 '사형장', '도살장'으로 부르는 이분들의 한을 풀어드리려면 위안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분쟁은 불가피하며, 당연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일이다.

한국에서 수도 없이 소녀상과 기림비를 세워도 일본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3국이 개입할 때 일본은 발끈한다. 몇 안 되는 할머니들이 쇠약한 몸을 이끌고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안부 문제를 끊임없이 공론화시키고 제3국이든 제4국이든 전 세계 평화인권을 좇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고양시는 2012년부터 꾸준히 운동을 벌여왔다. 국제적 SNS 서명운동을 전개해 2013년 10만 서명부를 유엔과 일본 대사관에, 지난 미국 방문에서는 22만 서명부 원본을 유엔에 전달했다. 나아가 평화·인권을 위한 범국민적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는 데 앞장서왔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 재직하던 약 30여 년 전부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를 계기로 할머니들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피켓시위 도중에 만난 수많은 외국인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믿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서명 동참 의사를 밝히는 장면이 수없이 반복됐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국제적 평화 이슈에 대해 세계의 시민들과 지도자들은 적극적으로 공감과 동참 의사를 피력했지만, 아직도 위안부 피해자 권리회복을 위한 운동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는 것이요,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고양시는 앞으로도 글로벌 SNS 평화인권운동을 가열차게 전개해나갈 것이며,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나눔의 집, 그리고 국제도시와의 연대를 통해 전 세계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부르짖을 것이다. 달걀이 닭이 되어 바위를 뛰어넘을 때까지.

/최성 고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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