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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35] 삼국지의 명품들

경인일보 발행일 2016-09-28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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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
'삼국지'는 누가 썼을까. 삼국지 판본사에서 큰 획을 그은 이탁오·나관중·모종강도 실제로는 단순한 필자 혹은 편찬자에 가깝다. 진수나 배송지는 창작자가 아닌 역사서 집필자들이다.

기실 '삼국지'는 오늘날 같은 작가의 개념을 전제로 만들어진 텍스트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필자들과 독자들이 함께 만든 공동창작물이자 적층문학(積層文學)이며, 작가들의 도전의지를 자극하는 경연장이었다.

'삼국지'는 1천8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끝없는 변용과 숙성을 거쳐 탄생한 진행형의 작품이다. 수많은 판본들의 존재와 끝없는 다시 쓰기(rewriting), 그리고 다양한 장르로의 몸 바꾸기(remaking)가 그 증거다.

일례로 1904년 부터 2004년 까지 한국에서 백년간 간행된 '삼국지'만 해도 400종이 넘는다. 해마다 40종 이상의 '삼국지'가 쏟아져 나온 셈이다.



수많은 삼국지들 속에서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패션뿐만 아니라 '삼국지들' 가운데서도 우뚝한 명품, 명작이 있는 것이다.

'이문열 삼국지'는 단순한 번역물이 아니라 날카로운 해설을 담은 평역으로 유려한 문체가 돋보인다. 문장을 읽는 맛도 그만이다. 그의 '삼국지'에 이르러 마침내 한국 삼국지는 하나의 정점에 이르게 됐다.

'박태원 삼국지'는 현대 삼국지의 조종이다. 해방 이후 현대 한국 삼국지는 '박태원 삼국지'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월북으로 박태원 삼국지는 출판인이자 동화작가인 최영해에 의해 완역되거니와 세칭 '최영해 삼국지'는 실제로는 '박태원 삼국지'였던 것이다. 최영해는 누구인가. 그는 한국 출판의 역사이자 동화작가였다. 또한 그는 한글학자 최현배의 아들이면서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다.

'박종화 삼국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역사소설을 읽는 것처럼 구수한 매력을 지닌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이문열 삼국지'가 나오기 전까지 '최영해 삼국지'와 함께 한동안 한국판 삼국지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다.

'김구용 삼국지'는 '모종강 삼국지'의 가장 충실한 완역으로 인해 그 원본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황석영 삼국지'는 박태원 삼국지를 계승한 모종강 계열의 삼국지로 21세기 독자들을 고려한 가독성 높은 정통 텍스트로 평가할 수 있다.

끝으로 '고우영 삼국지'는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의 창조, 재치 만점의 입담과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풍부한 인생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독창적인 재해석으로 인해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던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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