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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2]베스트셀러와 장르문학

경인일보 발행일 2017-04-05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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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베스트셀러(bestseller)의 사전적 정의는 '가장 많이 팔린 책(물건)'이다. 그런데 사람이나 직업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어미 '-er' 또는 '-or'을 붙여놓고 '가장 많이 파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라함은 어인 일인가. 그저 영어식 관행이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쳐왔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는 1897년 미국의 월간 문예비평지 '북맨(bookman)'이 잘 팔리는 책을 조사하고 목록화하면서 사용됐던 말이다. '베스트 셀링 북스(best selling books)'라는 긴 표현 대신 이를 축약한 베스트셀러란 편의상의 용어가 보편화하면서 1920년 무렵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공용어가 됐다.

우리는 1945년 을유해방 이후부터 이 개념이 도입됐다. 현재 베스트셀러는 출판동향 파악과 도서 선택에 도움을 주는 문화정보라기보다는 대중의 읽기 욕망과 자본의 부가가치 창출 열망을 자극하고 재생산하는 상품적 기표로 작동한다.

대중의 욕망에 성공적으로 호소한 장르문학은 심심치 않게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얻는다.



이 때문에 장르문학은 심오한 성찰과 언어의 예술성보다 오락과 위안에 우위를 두고 현실의 원칙보다 쾌락의 원칙을 따르며 타락한 현실에 저항하기보다는 타락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쉬운 문학, 상업적 성공이란 물신을 좇는 문학이라는 연역적 전제와 끈질긴 오해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예측 가능한 스토리(구조)와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는 특유의 디오니소스적 언술 행위는 장르문학의 특장이자 명백한 한계일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정비석(1911~1991)의 '자유부인'(1954)이 공전의 빅히트를 치자 이를 두고 "문화파괴자로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적군"이라 신랄하게 비판해마지 않았던 당시 황산덕(1917~1989) 서울대 법대 교수의 발언은 장르문학(대중문학)에 대한 문화엘리트들의 일반적 이해를 대변한다.

문학성과 대중성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상생하고 만나야할 동반자요, 조력자다. 당연히 베스트셀러는 상업적 · 대중적 성공의 결과이지 장르문학과 반드시 등가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 강렬한 카타르시스, 권선징악, 억압과 금기에 대한 도전, 새로운 세계와 모험에 대한 꿈으로서의 대중성은 미학적 탐색과 개선의 문제이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베스트셀러와 대중적 성공을 거둔 장르문학은 시대의 거울로서 동시대의 사회적 관심사와 흐름을 읽는데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되지만, 동시에 그것들은 시장의 논리가 만들어낸 거짓 욕망이기도 하다. 이 역설과 양가성을 잘 이해해야 여기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주도적 독서가 가능해진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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