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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5]하루키의 '1Q84'와 일본소설

경인일보 발행일 2017-04-2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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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문학의 본질은 영구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이라는 사르트르(1905~1980)의 명제는 흔들림 없이 굳건하였다.

근대문학의 사망을 선언한 가라타니 고진(1941~)이나 새로운 감각과 스토리로 두터운 팬덤을 구축한 무라카미 하루키(1949~) 열풍은 종래의 문학의 핵심이 미적 가치보다는 이념에 있으며, 사회변혁의 완수라는 역사적 텔로스에 두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루키의 '1Q84'는 새로운 문학의 세기가 개막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소설의 핵심은 시공간이 뒤틀려버린 1Q84년 헬스 트레이너이자 전문 킬러인 아오마메 마사미와 수학강사이자 대필작가인 가나와 덴고라는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1Q84는 1984년이 아닌 또 다른 1984년을 가리키는 조어로 여기서 'Q'는 '9'의 대체어이자 'qestion'의 약어이다.



상처받은 여성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노부인(오가타 시즈에)의 살인청부를 받고 여성을 학대한 남성을 은밀하게 처리하는 아오마메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통해 불쑥 시공이 뒤틀린 1Q84의 세계로 진입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오마메와 짧지만 강렬했던 인연을 간직한 채 수학강사로 살아가던 덴고는 후카에리의 대필작가로 '공기의 번데기'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정체불명의 유사종교 집단인 선구(先驅)의 추적을 받으며 현재의 세계와 병행하여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패럴렐 월드(parallel world) 속으로 말려든다.

소설은 아오마메의 이야기와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공투 학생운동 실패 후 고도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전망을 잃고 애니메이션과 대중소설에 빠져 지내는 후일담 세대의 삶과 내면을 반영한다.

가령 덴고/후카에리의 '공기의 번데기'를 기획한 편집자 고마쓰는 도쿄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60년대 안보투쟁을 전담하던 학생조직의 간부였고, 유사종교단체 선구는 전공투 실패 이후 자급자족형 농업공동체인 코뮌에서 발전한 비밀결사조직이며, 초자연적 능력을 보여주는 리틀 피플은 "일하고 일하다 의미도 없이 죽"어가는 일본인의 상징이다.

아울러 끔찍한 성실성과 집단적 통일성으로 무장한 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리들 피플이야말로 개인을 발명하는데 실패한 일본의 답답한 모더니티의 은유일 것이다.

하루키 소설의 문제성은 용의주도한 소설적 구성과 강렬한 흡인력을 지닌 스토리텔링 그리고 언어의 감촉이 다른 새로운 문체와 신화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 외에는 더 이상 이념도 종교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그와 같은 주장이 갖는 설득력이다.

단 한 번도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일본적 현상이 바로 하루키 팬덤의 원인이며, '1Q84'의 세계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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