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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67]진화 의미와 미래에 대한 성찰 '유년기의 끝'

경인일보 발행일 2017-05-10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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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진화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진보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또 사회적 · 국제적 갈등을 모두 일소하고 지구를 떠나 우주로 이주하는 것은 가능하며,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같은 문명론의 과제와 우주적 비전을 함께 다룬 SF가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 로버트 하인라인(1907~1988) 등과 함께 현대 영미SF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서 C. 클라크(1917~2008)의 '유년기의 끝'(1953)은 외계문명과의 접촉 및 진화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문제작이다.

'유년기의 끝'은 인류(사회)의 유년기의 종언과 신인류, 신문명 출현에 대한 이야기다. 이 같은 인류의 진화와 사회적 진보는 인간에 의해 주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버로드'라고 하는 외계의 지적 생명체(문명)에 의해 달성된다.

이 놀라운 진화를 주도하는 존재는 '캐렐런'이라는 오버로드의 대표자이다. 오버로드 캐렐런의 의지는 유엔사무총장인 스톰 그랜을 통해 전달되며, 단기간에 지구와 인류(사회)는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게 됐고, 모든 공공 서비스를 무료로 공급받을 수 있는 유토피아 사회가 열린다.



그러나 인류가 그토록 갈망해마지 않았던 평화와 과학적 발전의 대가는 혹독했다. 모든 것을 오버로드에 의지하다보니 독자적인 진보의 능력과 인간적 정체성마저 상실하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오버로드들의 행성에 갔다가 80년 만에 되돌아온 잰 로드릭스는 진화를 거듭한 인류가 더 이상 인류라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진화하게 된 상황을 목격하는 마지막 인간이 되며, 제프와 제니퍼 앤은 이전의 인류와 다른 새로운 정체성과 존재성을 지닌 최초의 인간이 된다.

이와 같이 인류사회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문제들이 앞선 외계문명의 힘으로 완전히 해결되자 돌연 인류사회는 목표와 꿈을 상실하고 정작 자신의 정체성마저 위기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 진화와 발전이 아니라 자기 삶과 운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즉 대립과 투쟁의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근거를 형성해가는 헤겔적 주체성이다.

'유년기의 끝'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적 ·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나려는 지적 문화운동인 트랜스휴머니즘(또는 포스트휴머니즘)적 문제의식에, 진화 · 사회 · 인간의 정체성 · 지구문명의 미래 등의 굵직한 주제를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나아가 인류사회와 지구문명의 미래와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고심을 담은 사회적 담론이기도 하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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