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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71]'장자'와 보르헤스, '아바타'와 '인셉션'

경인일보 발행일 2017-06-07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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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보르헤스 문학은 언제나 난해함과 경이와 독창성으로 번득인다. '원형의 폐허들(Las ruinas circulares, 1944)'은 그러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문학의 특장이 살아있는 단편소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꿈이며 물거품 같다는 '금강경' 일구와 '장자' '제물편'에 등장하는 호접지몽의 고사를 소설로 옮겨놓았다.

작품의 주인공은 마법사다. 그는 오래 전 불에 타 폐허로 변한 신전에서 인간에 대한 꿈을 꾸고 싶어 한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마침내 그는 꿈속에서 완벽하게 한 소년을 만들어내고 그 소년에 대한 꿈을 꾸어낸다.

그런데 불길 속에서도 죽지 않는 자신을 지켜보면서 자신 역시 다른 이에 의해 꿈꾸어진 꿈이요 환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나비가 되어 노니는 꿈을 꾸었는데 종국에는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고사 그대로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하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는 몽환성과 애매모호함, 또 꿈속의 꿈을 설정하는 이 치밀한 유희는 '원형의 폐허들'의 가장 빛나는 부분일 것이다.



우리네 인생과 존재 자체가 한바탕의 꿈이라 설파하는 '금강경'과 '장자'의 가르침, 그리고 이를 문학적으로 차용하여 자아의 비실재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보르헤스 문학은 장르문학과 블록버스터 영화로 이어진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2010)은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들'이 만들어낸 꿈이다.

'인셉션'의 주요 이미지들과 영상언어는 보르헤스에 더해 안과 밖, 위와 아래, 시작과 끝 같은 구분이 해체되고 원근법마저 와해돼버린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상대성'(1953), '손을 그리는 손'(1948) 같은 초현실적 그림들을 연상케 한다.

'아바타'는 자원을 약탈하려는 지구인들과 이에 맞선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 간의 대립과 전쟁을 그린 영화다.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영웅으로 거듭난 제이크는 나비족의 편에 서서 전설의 신수(神獸) 토루크 막토(그레이트 리오놉테릭스)를 타고 전장을 누비며 판도라 행성을 지켜낸다.

장자와 보르헤스와 SF영화로 이어지는 상호텍스트성의 흥미로운 연쇄도 그러하고, 이들 작품을 통해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영인지 모호해진 '매트릭스'와 시뮬라시옹 상황 속의 현대사회와 우리의 삶을 문득 돌아보게 된다.

인생이란 꿈속에서 꿈을 꾸는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그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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