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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74]고우영의 '삼국지'

경인일보 발행일 2017-06-28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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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고우영(1938~2005)의 '삼국지'(1978)를 보노라면 뜬금없이 켄 키시의 소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1962)가 떠오른다. 소설은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1975)로 인해 더 알려졌다.

인간을 길들이려는 정신병원의 음모와 억압에 맞서던 나이롱환자 맥 머피가 환우들 위에서 군림하던 수간호사 랫 치드의 상의를 잡아당겨 적나라하게 젖가슴이 드러나도록 한 대목이 유명하다. 권위에 대한 도전과 조롱, 그리고 꺾이지 않는 자유의지를 표현했다.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의 권위를 해체하고 대중적 고전을 더 대중화한 만화다. 1978년 1월 1일부터 1980년 7월 31일까지 790회에 걸쳐 '일간스포츠'에 연재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등장 같은 역사적 격랑으로 인한 불안과 분노 등 정치적 피로에 시달리던 대중들에게 큰 위안과 웃음을 안겨줬다.

'삼국지'는 시간에 대한 내구성이 매우 강한 영웅서사요, 전쟁서사다. 고우영은 이 전쟁 · 영웅서사를 해학과 풍자 서사로 진화(?)시켰다. 한 텍스트를 다른 장르의 텍스트로 바꾸는 것―특히 문자텍스트를 이미지텍스트로 전환하는 작업을 각색(adaptation)이라 하는데, '고우영 삼국지'는 '모종강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 각색에 해당한다.



비판적 각색은 원작의 틀을 유지하되, 작품을 재해석하고 다소의 허구적 창작을 가미하는 것을 말한다. 원작 그대로의 각색은 말 그대로 원작의 명성에 의존한 채 원작의 재현에 치중하는 것을, 자유각색은 원작을 아예 새로운 텍스트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가리킨다.

고우영은 질펀한 입담과 코믹한 화풍으로 유비의 인(仁), 관우의 의(義), 공명의 충(忠)처럼 추상적 관념성과 유교계몽주의로 가득한 '삼국지'를 해학이 넘치는 라블레적 서사로 만들어냈다.

유비를 인의(仁義)의 뒤에 숨어 권력의 의지를 불태우는 내숭 떠는 쪼다로, 제갈량을 유비에게 황제 자리를 주는 대신 자신은 역사적 명성을 얻으려는 야심가로 묘사하고 있으며, 여기에 관우-제갈량의 라이벌 의식과 심리적 갈등을 새롭게 가미했다.

작가 자신의 캐리커처를 유비의 모습으로 삼은 것이라든지, 스토리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 서사에 참견하고 토를 다는 주석적 시점(註釋的 視點)이라든지, 포복절도케 하는 거친 입담과 다양한 성적 모티브의 활용은 '고우영 삼국지'를 가장 개성 넘치는 텍스트로 만들어낸 비결이다.

'고우영 삼국지'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삼국지'(1974)와 차이즈종의 '삼국지'(1991) 등과 함께 한중(대만)일 각국을 대표하는 삼국지 만화다. 한중일 삼국지 만화를 비교해 가며 읽는 것도 재미있고, 이 만화삼국지들이 보여줄 쟁패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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