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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서 삼국시대 추정 '석성' 발견

김재영·김우성 김재영·김우성 기자 발행일 2017-04-20 제2면

문화유적 시굴조사, 기능·규모 밝힐 단서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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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석성 사굴현장. 사진 왼쪽 윗부분이 성의 몸통 격인 체성벽이고, 바로 앞으로 보축성벽이 구축돼 있다. 같은 선상 5m 옆에서도 석성이 이어지는 것이 확인됐다. 고양/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덕양산 능선 3m 높이 성벽
토성 인식 속 추가발굴 주목
전투 장비 공방 존재 가능성
고려추정 기와편 '幸' 새겨져

지금껏 둔덕 형태 토성으로만 알려졌던 국가사적 제56호 고양 행주산성에서 정교하게 쌓아올린 석성이 발견됐다. 이와 함께 전투장비를 제작·수리하는 공방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고양시가 행주산성 종합정비계획 수립에 앞서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에 의뢰, 지난 2월 27일부터 문화유적 잔존 예상지 4곳에 대해 문화유적 지표조사와 시굴(시범발굴)조사를 한 결과, 덕양산 능선에서 높이 3m가량의 석성과 삼국~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 및 철기 수십점을 발견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은 보축성벽이 먼저 발굴되고, 몸통 격인 체성벽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선상 약 5m 옆으로 보축성벽이 이어진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시굴 관계자는 "돌과 돌 사이가 점토로 연결, 일종의 아교 역할을 함으로써 전혀 흐트러짐 없이 보존돼 있었다.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철제 화살촉과 가위, 원뿔형 철정, 철제 차관(수레바퀴 부속품)이 쏟아져나와 행주산성에 공방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키웠다. 현장에서는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굵은금무늬, 격자무늬 기와와 토기 조각도 다수 발견됐다. 특히 고려시대 추정 기와편에는 행주산성의 한자어인 행복할 '행'(幸)자가 새겨져 있다.



산성 일대에는 살구나무가 많아 과거 살구 '행'(杏)자를 사용하다가 조선 숙종 때 행복할 '행'자로 바뀌었다고 전해졌으나 그전부터 백성들은 두 한자어를 혼용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왜군을 무찔러 역사성이 높은 행주산성은 그동안 정확한 성곽 형태와 규모가 전해지지 않았었다.

산성이 위치한 덕양산은 한쪽 면이 절벽인 한강하구 천혜의 요새라 신라의 서해 진출, 고구려의 남하 등 과정에서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국방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고고학적 조사에서 삼국~고려시대 유적이 확인된 바 있지만, 지금까지 성곽은 둔덕 형태의 토성 400여m 정도만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덕양산의 지형을 고려해 행주산성이 1㎞ 정도 둘레의 토성이었을 것으로 예상해왔다. 이번 발견은 행주산성의 구체적인 형태와 규모 등을 밝힐 실마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차용걸 충북대 명예교수가 '이번에 확인된 성벽은 삼국시대 이후 2~3차례에 걸쳐 보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비탈면을 따라 추가 발견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20일 고양시를 방문해 발굴 추진계획을 논의한다.

고양/김재영·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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