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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84]북한식 대중문학 '꽃 파는 처녀'

경인일보 발행일 2017-09-0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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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북한에도 대중문학이 있을까. 있다. 있되, 다르다. '꽃 파는 처녀'가 그렇다. '꽃 파는 처녀'는 북한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통하는 작품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란 김일성과 김정일의 창작 혹은 지도로 만들어진 혁명예술을 통칭하는 북한식 문학예술의 한 범주다.

'꽃 파는 처녀'는 김일성의 지도로 1930년 만주 오가자 지역에서 초연됐다고 한다. 1972년 영화화되어 같은 11월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개최된 제18회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고, 2012년 12월에는 단일 가극으로 1천500회 공연을 돌파했다.

1977년 4·15창작단에 의해 장편소설로 각색(?)됐다.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인민배우 홍영희가 북한의 지폐 도안으로 채택될 만큼 북한문학의 대표주자이다.

'꽃 파는 처녀'는 혁명가극·영화·소설·동화 등으로 만들어진 주체예술의 모범이자 정전(正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념을 걷어내고 스토리 자체와 이야기 구조를 따져보면 신파극과 대중소설에 가깝다.



작품은 꽃분이와 동생 순희 그리고 어머니와 오빠 철용 등 일가족을 중심으로 한 배지주 부부와의 계급적 갈등과 투쟁을 중핵으로 삼고 있는바, 병든 몸으로 배지주집에서 종살이하는 어머니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꽃을 팔러나간 꽃분이와 당사주를 봐주는 노인의 대화가 비근한 예다.

꽃분이의 사정을 듣고 난 노인이 "그러니 아버지는 머슴 살다 돌아가시구, 오빠는 감옥소에 잡혀 가구 어머니마저 병들어 앓고 계시는데 어린 동생은 눈까지 멀었단 말이냐? 허참 세상에!"라며 장탄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노인은 꽃분이의 수난을 다시 독자들에게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일반 독자(청중)의 반응과 감정을 유도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꽃 파는 처녀'는 주요 플롯이나 모티프 등을 볼 때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단편소설 '눈 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1900)과 강한 유사성과 상호텍스트성을 보여준다.

슈니츨러의 소설은 1938년 2월 유치진의 번역으로 16회에 걸쳐 공연됐으며, 1954년 10월 소설가 안수길이 학생잡지 '학원'에 번역한 바 있고, 1959년 김진성이 독한대역문고로 펴낸 바 있다.

'꽃 파는 처녀'를 통속 대중소설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뚜렷한 선악 이분법·감정의 과잉·우연의 남발과 비약 등 신파극과 대중소설적 성격이 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대중계몽을 위한 이념형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강한 대중성을 추구한다. 이처럼 대중소설, 장르문학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선전, 선동형의 작품에서도 핵심적 요소로 채택, 활용될 만큼 문학예술의 중핵을 이룬다. 북한의 '꽃 파는 처녀'가 이를 입증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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