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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가교, 인천·(4)관우와 달마의 위험한 동거]사당·비밀결사단체의 둥지 '의선당'

박경호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7-12-0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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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인천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의선당 전경(왼쪽)과 5일 오후 7시 인천 동구 화도진도서관에서 열린 인천대 중국학술원 시민강좌에서 중국식 사당 '의선당'에 얽힌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이정희 인천대 교수. /화도진도서관·인천대 중국학술원 제공

관우등 신 모신 민간신앙지
中서 퍼진 '재가리' 단체 설치
이후 달마불교회 이름 바꿔
화교 질서유지 '영향력'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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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화도진도서관, 경인일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2017년 중국학술원 시민강좌 '한국과 중국의 가교, 인천'의 네 번째 강좌가 5일 오후 7시 인천 동구 화도진도서관에서 열렸다.

이날 강좌에서는 화교 연구자인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가 '관우와 달마의 위험한 동거'라는 주제로 인천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義善堂)'을 이야기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의선당은 인천화교 민간신앙의 총본산이다. 삼국지의 영웅으로 재물신이자 무신인 '관우', 바다의 항행을 지켜준다는 '마조', 중생을 위험에서 구제해 준다는 '관세음보살', 재앙을 물리치고 평안을 준다는 '호삼태야', 물과 사해를 주재하는 '용왕'의 신전이 의선당에 있다.

이들 신은 중국의 토테미즘, 민간신앙, 도교, 불교에서 유래됐다. 동남아시아와 일본은 대체로 1곳의 사원에 1~2명의 신을 모시는 게 일반적인데, 의선당처럼 다양한 신을 한 공간에 모신 경우는 드물다.

의선당이 지금의 인천 중구 북성동 2가 9의 13(차이나타운로 34)에 자리한 시기는 1915년으로 추정된다. 의선당 정문에 걸린 '인천 의선당(仁川 義善堂)' 편액은 장전명(張傳明)이 을묘년(1915년) 10월 의선당 제1대 주지 혹은 법사였던 영중(領衆) 황합경(黃合卿)에게 기증한 것으로 돼 있다.

의선당은 그 명칭에 나타난 대로 본래 중국 명나라 때 생긴 일종의 자선단체인 '선당(善堂)'으로 시작했다. 이주지에서 불우하게 사망한 화교의 시신을 안치해 고향으로 보내줬고, 고향에 돌아갈 여비가 부족한 화교에게 금전을 지원하는 자선활동을 펼쳤다.

선당은 의선당같이 지역민이 숭상하는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많았다. 이러한 형태의 선당을 '배신선당(拜神善堂)'이라 한다.

인천차이나타운 의선당 내에는 비밀결사단체인 재가리(在家裡)가 설치돼 있었다. 중국 남방에서는 재가리를 청방(靑幇)이라 불렀다. 1930년대 중반 중국 전역에는 1천만명의 회원이 있었다.

의선당 재가리는 1934년 일본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폐쇄 명령을 받았다. 중국 공산당과 관련됐다는 이유다. 이후 재가리의 명칭은 '달마불교회'로 바뀌었다.

달마불교회는 선·후배 간 위계와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 회원 간 독특한 암호가 있어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암호로 소통하면 무조건 도와줄 만큼 연대의식이 강했다.

규율을 어긴 회원은 달마불교회 향당에서 몽둥이로 처벌받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 한국화교 달마불교회는 회원이 2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화교사회 질서유지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의선당은 인천화교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중국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장소다. 의선당에 비밀결사단체인 재가리와 달마불교회가 둥지를 튼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러나 인천화교 인구의 감소로 의선당과 달마불교회가 과거의 활기를 점차 잃어가는 것은 상당히 안타깝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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