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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1]# 원숭이가 먹으니 # 우리도 먹어요 -잠비아 편

경인일보 발행일 2017-12-12 제9면

'자연의 법칙' 안에서 놀듯 크는 검은 눈망울들
굴렁쇠 굴리고, 코끼리떼 마중 가고, 팜 트리에 돌팔매질 하거나, 원숭이 밥 함께 먹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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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폭포가 있는 워터프런트 마을엔 국립공원 출장요원이 아이들 상대로 '야생동물 안전교육'
길 위에 노인과 손자 앞에 '남몰래 적선' 직구 날리는 할머니 "이거 자네거지?"… 허기라도 달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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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트리

잠베지 강으로 이어지는 빅토리아폭포가 있는 마을 워터프런트. 저녁 무렵 숙소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자 숲 입구에 아이들이 떼로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국립공원 쪽에서 나온 코끼리 떼가 늘 비슷한 시간에 마을 앞을 지나 빅토리아 폭포 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인다며 조금 기다리면 코끼리 떼를 볼 수 있을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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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하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하는 아이들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들과 흙장난을 하며 곧 나타날 코끼리 떼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20마리 쯤 되는 코끼리들이 등장하더니 마을 근처 아카시아 잎과 나뭇가지를 모조리 훑으며 작은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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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멋진 포즈를 부탁했더니 이렇게 삐딱하게 서서 나를 웃게 했다. /김인자 시인 제공

그러고 보니 내가 머무는 캠프촌이나 동물원 경계지역도 예외 없이 전기울타리가 쳐져있었는데 모두 야생동물들로부터 사람이나 집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늘 보는 코끼리일 텐데 아이들은 코끼리 떼가 나타나자 즐거워하면서도 줄행랑치기에 바쁘다. 워낙 힘이 좋고 덩치가 큰 짐승이니 가까이 가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어느 보고서를 보면 아프리카에선 동물에게 밟히거나 채여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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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벌판에 외로이 서있는 아카시아 나무에 매달아 놓은 건 벌통이다. /김인자 시인 제공

다음 날 오후 마을에 나가보니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팜트리 그늘 아래에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국립공원에서 출장 나온 안전요원이란다. 워터프런트 마을이 동물들이 다니는 통로여서 평소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런 교육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며 아이들을 모아놓고 안전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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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렁쇠 하나면 마을 아이들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김인자 시인 제공

교육이 끝나길 기다려 그와 몇 가지 일문일답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의 이름은 '쿠완다 반다'로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신뢰가 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야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마을이어서 이런 교육이 평소 얼마나 필요한지 잘 설명해주는 듯했다.

이곳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매우 자연적이며 단조롭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20m는 되는 팜트리에 돌팔매로 팜열매를 따는데, 모든 아이들이 돌던지기 명수여서 한 아이가 10개의 돌을 던졌다면 8개쯤 열매에 맞는 명중률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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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는 소년. /김인자 시인 제공

팜트리에 달려있는 열매 팜은 식용기름(팜유)이나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나 아프리카에선 겨울철 과일이 부족할 때 주로 원숭이들의 밥이 된다고 하는데, 열심히 돌을 던져 팜 열매를 따면 원숭이와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도 먹는다. 먹어보니 약간 단맛이 있긴 했지만 돌처럼 단단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이 텁텁했다.

그런 팜 열매를 워터프런트 아이들은 누구나 따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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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열매. /김인자 시인 제공
"얘들아, 팜 열매는 원숭이 밥인데 왜 너희들이 먹어?"

돌아온 답은 간단하다. "원숭이가 먹으니 우리도 먹어요!"다. 이렇게 현명하고 명쾌한 답이 또 있으랴.

나는 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야생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먹는 것을 그들이 먹고 그들이 먹는 것을 우리가 먹는다면 인간과 동물에게 다른 급을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 아닌가싶다. 그들에겐 원숭이와 사람이 구별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배가 고파서라기 보다 놀거리가 없는 심심한 아이들이 저녁 무렵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코끼리 떼를 마중하거나 그 높은 팜트리에 돌팔매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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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버스를 기다리는 여인. /김인자 시인 제공

*이거 자네 거야?


캄보디아 앙코르 사원 안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의외의 반응이었다. 한 여자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녀는 돈을 보자 무작정 손사래를 쳤다. 알고 보니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사람들이 없을 때 그의 어린 딸의 손에 몰래 돈을 쥐어주곤 도망치듯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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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서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 /김인자 시인 제공

그런데 이번엔 빅토리아 폭포 상가 화장실 앞에서 나이 든 할머니가 손자와 나란히 앉아 여행자들의 적선을 기다렸다. 다가앉아 말을 붙여봤지만 할머니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할머니 앞에는 빈 그릇 두 개가 놓여있었다. 나는 손자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작은 지갑을 할머니 곁에 살짝 떨어트려놓고 자리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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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적선을 기다리는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손자. /김인자 시인 제공

몇 발자국을 걷는데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가 불러 돌아보니 "이거 자네 거지?"하고 지갑을 흔들며 물었을 때 모르는 일이라며 사인을 해보였다.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간식비를 줄이고 하룻밤 숙박비 정도를 그 안에 넣었는데, 그 정도면 할머니와 손자가 한동안 허기를 달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남은 여행은 한결 가벼울 것만 같았다.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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