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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장소성 회복의 첩경

김창수 발행일 2018-03-14 제13면

'변질된 공간' 시민 접근 가능한 영역으로 재생
즉물적 발상은 '복고심리 자극' 일회성에 불과
진정한 기억, 장소가 겪은 고통·시련 되살려야


김창수-인천발전연구위원2
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장소성의 회복은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도시와 지역혁신 사업에서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장소성(placeness)란 장소가 갖고 있다고 여기는 고유한 성격이나 분위기, 혹은 사람들이 느끼는 독특한 감정이다. 일반적으로 일정한 지역이나 건축물을 가리키는데 '공간(space)'이나 '장소(place)'라는 말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감은 대조적이다. '장소'라는 말은 오래된 성터나 고향 마을과 같은 곳을 환기한다면, '공간'은 현대적인 건축의 내부나 합리적으로 구획된 영역, 혹은 신화 속의 환상적 배경 등을 가리킨다. '장소'는 낯익고 정겨운 곳으로 받아들이지만 '공간'은 낯선 곳으로 여긴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영역의 소유나 점유방식, 기능상의 특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장소는 마을의 빨래터나 실개천에 놓인 징검다리처럼 구체적이며 주변의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분명하다. 그만큼 투명하고 가시적이다. 장소와 관련된 기억은 상대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것들이다. 장소는 비교적 좁은 면적을 차지하며 한 점으로 수렴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아늑하고 친근한 곳으로 체험된다. 장소는 주체의 특수한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대체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는 곳이다.



공간은 대학의 강의실이나 호텔의 객실과 같은 곳이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규칙적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고유성이 없는 숫자나 기호로 구분된다. 공간은 특정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영역이므로 주체의 행위를 은연중 강요한다. 자동차는 도로 위에 올라서면 달려야 하고 교실은 공부하는 곳이고 공장은 제품을 만드는 곳이며 미술관에 들어서면 '진지하게'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 공간은 기능 때문에 더 규격화되고 균질적으로 바뀌며 거대한 아파트 단지처럼 사람들에겐 정서적으로는 더 낯선 곳이 된다.

근대 이후의 사회적 변화는 산업화와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도시화였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화야말로 정든 장소를 낯선 공간으로 바꾼 제1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삶의 영역과 터전들이 자본에 의해 사적 소유로 점유되면서 삶터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적 성격과 본래의 아우라(aura)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서울 중구 소공동의 환구단(원丘壇)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제천행사가 열렸던 국가사적지지만 시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의 환구단 유적은 조선호텔의 정원처럼 여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장소성의 회복이란 터가 가지고 있던 공유 기능의 회복이다. 개인이 점유하거나 상품으로 변질된 공간을 다시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공유 가능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특정한 지역이나 터전이 주민과 가졌던 본래의 관계, 사회적 역할과 정서적 기능을 살펴보고 현 시점에서 복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야 한다. 치밀한 고증을 통해 망각된 이야기들, 역사와 기억을 되살려 내야 한다. 즉물적 발상이나 일방적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대중의 복고심리를 자극하는 일회용 소모품이 되고 만다. 장소성은 장소의 기억과 이야기이다. 진정한 기억이란 미담이나 신화도 있지만 장소가 겪어온 고통이나 시련도 마땅히 되살려야 하는 것이다.

/김창수 인천발전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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