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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교황, 카스트로 그리고 김정은

이영재 이영재 발행일 2018-10-1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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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0일.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쿠바 국민을 상대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며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말로는 쿠바 인민을 위한다면서 개인숭배에 빠진 카스트로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에서 4일을 머무르는 동안 포용과 사랑으로 쿠바의 변화를 독려했다. 쿠바 국민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베네딕토 16세의 쿠바방문 때보다 프란치스코를 더욱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황이 54년 만의 미국·쿠바 국교정상화에 막후 중재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만났다. 카스트로는 늘 그랬듯 세 줄이 있는 파란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교황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체제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스트로의 고교 은사이자 예수회 신부인 아만도 요렌테의 설교집을 선물했다. 거기엔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은사인 요렌테 신부를 추방했다. 요렌테 신부는 고국 쿠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생을 마쳤다. 신부의 설교집 전달은 카스트로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교황의 간곡한 뜻이 포함돼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에 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된 얘기라 단정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교황 방문을 간곡히 원하는 것과 문 대통령이 교황의 평양방문을 희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이 교황을 초청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전 세계에 북한을 정상국가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교황이 방문을 수락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수락해도 쿠바와 평양은 너무 다른 나라다. 쿠바국민의 60%가 가톨릭 신자지만 평양에는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 20만명의 정치범이 있는 세계에서 인권탄압이 가장 극심한 나라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교황으로선 나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무런 소득 없이 그저 '왔소 갔소'로 끝난다면 방문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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