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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학문 부재의 위험사회

윤상철 발행일 2018-11-20 제22면

인류 정체성 마저 흔드는 사회변동
미래 더 복잡하고 불안하게 만들어
우리에 대한 지식 남에게 의존하며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와
이젠 '자유로운 학문'으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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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에 '학문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일군의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여러 학문공동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국가와 사인의 침해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규율하는 절차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며 시설, 인력, 재정 등 그 물적 기반이 사회권으로서 국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문의 자유도 대학의 자치도 빈곤한 사회 현실에 대한 자성이면서 미래위험사회를 맞이하여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학은 학생들에게 학문도야의 공간이라기보다 취업을 위한 디딤돌 정도로 인식된다. 대학교수가 되려는 이들은 학문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기보다는 어떤 연구분야와 대학(원)이 더 유망한지를 중시한다. 국가와 사회도 다르지 않다. 학문은 정부관료와 정치세력의 입장과 정책을 정당화하고, 교육은 기업이나 산업의 성장에 기술적으로 혹은 인력 수급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지가 관건이다.

역사적으로도 학문의 역할과 효용은 제한적이었다. 조선시대의 학문과 교육은 유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학자선비들에게는 입신양명의 지적 수단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통치에 필요한 관료들을 선발하고 이에 순치된 신민을 양성하였다. 개발독재기와 신자유주의시기에 학문과 교육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도구였고, 서구 선진국가를 복사하여 따라잡기 위한 지적 도구였다.

학문과 교육이 국가와 기업에 의해 그 사회적 역할이 제약되는 상황에서 본질적 자유이자 기본권으로서 수용되기는 어렵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조건 없는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로 인해 학문생산은 분산적이고 파편적인 생산체제하에서 이루어졌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재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 학문생산의 기지이자 후속세대의 교육장인 대학원은 국가지원 프로젝트에 연명하는 부실한 교육체제였고, 해외유학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학문연구자들을 주도적으로 양성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사회적 배경이 유학이 가능한 계층으로 편중되고, 그들의 지적 기반과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디커플링(Decoupling)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존재와 역할은 훨씬 근본적이다. 즉, 학문은 학자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도구적 지식이 아니라 그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 국가, 인류공동체 나아가 지구생태계의 지속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학문이 다루는 대상이나 학문의 성과와 연관된 사람들이나 집단이 다양하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기대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두를 위한 사회적 공공재를 생산함으로써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른바 '한국 사회과학의 토착화'로부터 시작되어 주기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사회적으로는 비주류 학자들의 자기변호이자 집단이익추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선진국들의 과거를 발생학적으로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경험하였고 향후 전개될 지속불가능한 위험사회는 그야말로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고 그 적절한 대안도 내지 못한 완벽하게 새로운 사회임을 깨닫고 있다. 경제와 과학이 발전하면서도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재난들이 출현하고, 후기후발자본주의국가가 경험한 적이 없었던 극도의 고용불안이 나타나고,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절멸국가의 경고를 받고 있으며, 이주노동자와 해외 취업으로 국가간 경계가 불명확한 초이동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과 지식정보사회는 인류 자체의 정체성마저도 흔들고 있다. 이렇듯 대안없는 극심한 사회변동의 상황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세계경제체제 내 위상, 사회체제와 역사적 유제 등은 우리의 미래를 훨씬 복잡한 위험사회로 만들고 있다.

마크 트웨인은 ''사람들은 몰라서 곤경에 빠지는 게 아니라 잘 알면 곤경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착각 때문에 곤경에 빠진다"고 말했다. 정작 우리 사회는 우리에 대한 지식을 남에게 의존하면서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왔다. 근거 없는 착각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모한 무지일지도 모른다. 학문, 특히 자유로운 학문이야말로 그 출구를 찾아줄 이정표일 수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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