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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초대석]'성정예술인상 첫 수상' 최영섭 작곡가

공지영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18-12-12 제15면

70여년 오선지와 씨름한 구순의 대가… 남은 생애 하루도 게으르지 말자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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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곡의 거장 최영섭 작곡가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귀한 상 감사… 평생 노력한 결과 알아줘 감격"
'그리운 금강산' 등 가곡만 700여곡 세상에 내놔
교향곡·칸타타·합창 등 기악곡도 70여곡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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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의 작곡가는 여전히 밤이 새도록 오선지와 씨름한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하루에 2끼만 먹으며 작품을 고치고 또 고친다.

 

오선지 위에 그려진 음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으면,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소주를 꺼내 답답한 마음을 달랜다.

그렇게 정신없이 구상을 하다 문득 시계를 보면, 꼭 새벽녘이다. 이것은 한국 가곡의 거장 '최영섭'의 일과다. 10일, 서울 홍파동에 위치한 홍난파의 집에서 최영섭 작곡가를 만났다.

거동이 불편해졌고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이제 정말 나이를 먹는가보다'고 토로하던 그는 음악 이야기를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얼마 전 성정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제 1회 성정 예술인상의 첫번째 수상자가 됐다. 성정예술인상은 최영섭 작곡가와 같이 한국 예술계를 빛내고 헌신한 원로 예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그리운 금강산을 비롯해 목계장터, 추억, 망향 등 한국 가곡 중에 우리 귀에 익숙하다 싶은 곡 대부분이 최 작곡가의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예술인을 제치고 그가 첫번째 수상자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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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뭉클함이 몰려오는 듯 짐짓 생각에 잠겼다.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귀한 상이에요. 성정문화재단에서 주는 첫 성정예술인상에, 문학·미술·무용 뿐 아니라 기악도 있고 성악, 지휘 등 더 대중에게 잘 알려진 분야도 많은데 작곡만 평생 해온 나에게 영예로운 상을 줬습니다. 수상소식을 듣고 한편으로 내가 이런 상을 받을만한 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니,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게으르지 않고 오선지 위에 펜을 놀려왔던 것이 생각났어요.

그래도 평생 노력한 그 결과를 이 사회가 알아주는구나 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상을 주셨으니, 사회에 돌려보내야죠. 남은 생도 하루도 게으르지 말고 작품을 써내려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작곡가로 70여 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700여 곡의 가곡을 작곡했고 지난해에는 재수정을 거친 가곡악보 7권을 완간해냈다.

교향곡, 칸타타, 합창곡 등 그가 작곡한 기악곡도 70여 곡에 이른다.

교향곡 한 작품을 작곡할때 악보 100장이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70여 년의 시간 동안 그가 그려 온 악보는 수십만 장에 이를 것이다. 정말 쉬지 않고 한국 클래식을 이끌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곡하는 일이 정말 즐거웠어요.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가곡은 '추억'이라는 곡인데, 조병화 시인이 어느 날 나를 바닷가로 불렀어요.

조 시인은 소주를 마시고 나는 멍하니 바다 끝 지평선을 보고 있었는데, 해질녘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하나 둘 그 뒤에 또 셋, 넷 무리지어 걸어오는 아낙네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장면이 쓸쓸하고 조용하면서도 너무 인상적이라 금세 악상이 떠올랐고, 그 자리에서 조 시인도 작시를 해줬어요.

내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는 '그리운 금강산'도 아주 재밌는 탄생 일화가 있습니다. 1957년에 KBS방송국에서 '이주일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당대의 시인에게 시를 청탁하고 그 시를 바탕으로 작곡가들에게 가곡을 만들도록 한 다음, 완성된 곡을 녹음해 방송하는 거였어요.

'낙동강 구비친곳' '한강물 마르지 않고' '압록강은 흐른다' 등 그때 내가 작곡한 곡들이 참 인기가 많았는데, 한번은 동요 작곡가인 한용희 선생이 나에게 '선생은 우리나라 자연을 그렇게 잘 쓰면서 금강산은 왜 작곡하지 않습니까' 라는거예요.

그 말에 쾅 하는 충격을 받았고 그 길로 한상억 시인에게 금강산을 작시해달라 부탁하니, 바로 '그리운 금강산'을 주었습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첫 소절을 읽고 단숨에 작곡했죠. 교향곡, 합창곡 편곡까지 단 일주일 만에 그리운 금강산이 세상에 나왔어요."

그는 그러면서 또 다른 그의 대표작, '목계장터'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에 노래를 붙인 목계장터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곡입니다. 사실 목계장터는 어려운 곡이에요. 보통 3~4분 정도 길이인데, 이 곡은 8분이 넘어가요.

우리 국악, 특히 판소리와 창의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어요. 이 곡을 만들기 전까지 내 인생은 그저 서양의 것이라면 좋은 줄 알고 그것만 좇았는데, 그게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만약 예순살로 돌아가면 나는 양악은 다 버리고 국악을 작곡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요. 뒤늦게 철이 든 셈이죠.

한국사람이면서 이렇게 좋은 가락을 그동안 외면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그래서 목계장터 이후 작품에는 한국의 가락과 민속적 리듬을 많이 차용해 한국적 색채를 표현하고자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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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섭 작곡가가 서울 홍난파의 집에서 성정예술인상의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가장 사랑하는 '목계장터' 신경림 시에 노래 붙여
판소리·창 영감 "예순으로 돌아가면 국악했을 것"
"베토벤·모차르트만이 아닌 한국인곡 무대 기회를"

그가 작곡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클래식 무대에서 한국 가곡이 사라진 지금의 현실이 서글퍼졌다. 옛 시절이 더 음악 하기 좋은 세상이었다 넌지시 물어보니,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한국전쟁 직후부터 1995년까지, 비록 우리 한국 음악계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작곡과 연주 분야 모두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KBS, 서울시립, 인천시립 교향악단 정도뿐 이었지만, 곡을 발표하면 교향악단들이 앞다퉈 연주해줬어요. 우리나라 작곡가가 어렵게 교향곡, 칸타타, 오페라를 쓰면 비용을 무릅쓰고라도 무대에 올리려 애썼죠. 그런데 1995년부터 지금까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경제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대국이 됐는데, 나라가 온통 향락주의에 빠졌어요. 클래식도 무조건 베토벤, 모차르트만 대단한 줄 알고 한국 사람이 쓴 오케스트라, 가곡은 무시해요. 한국사람이 썼다고 하면 듣지도 않으니, 무대에 오를 일이 없죠.

그래도 다행히 십여 년 전부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같이 지역의 경쟁력 있는 오케스트라들이 많이 생겨 다양한 무대가 많아졌지만, 한국의 가곡이나 교향곡을 연주하는 곳은 거의 없어요.

그럴 때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당장은 수준이 낮더라도 자꾸 연주해줘야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고 스스로 성찰하면서 발전합니다. 무대조차 없으니 내 음악을 들어 볼 기회도 없는 거예요."

그는 여전히 자신의 곡이 연주되는 무대를 구상한다. 매일 악보를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것도 그 이유다.

"내가 만든 교향곡을 들어보면, 지금도 고치고 싶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에요. 그래서 내 마음에 들게끔 매일 가다듬고 있는데, 70여 곡을 다 하려면 4~5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기악곡을 모두 수정해 출판사에 악보를 보내고 꿈에도 못 잊을 내 고향 강화도로 돌아가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래서 손에 꼭 쥐고 선 그의 가방 안에는 여전히 오선지가 가득하다.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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