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국에 법인 둔 자동차 판매량 '세계 5위'
현대자동차는 1967년 12월 미국의 포드자동차와 합작해 자동차 회사로 탄생했다. 사진은 국내 최초로 자체 모델로 개발된 '포니'가 수송차에 실려있는 모습. /현대자동차사 제공 |
정주영 창업주는 울산공업단지 내에 10만평의 자동차공장 부지를 마련하는 한편 1967년 12월 미국의 포드자동차와 합작해 자본금 5천만원의 현대자동차(주)를 설립하고 대표이사에 아우 정세영을 임명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신진자동차(대우GM의 전신)는 일본의 토요타자동차와 기술 제휴해 생산한 코로나를 '새나라'란 상표로 국내 승용차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한국의 자동차 전망이 밝은 것으로 판단한 포드는 국내 진출을 결심하고 1966년 4월부터 국내 기업들과 접촉 중이었는데 현대가 참여하면서 손을 잡은 것이다.
>>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
신생업체인 현대자동차가 자본의 회임 기간이 가장 긴 대형 산업에서 그것도 선발기업들과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갖기 위해선 토요타보다 한발 앞선 자동차 메이커와의 협력은 불문가지였다.
1968년 5월부터 울산공단 내에 연산 3천500대 규모의 생산공장을 착공했다.
파트너 포드와의 사이에 부품비율을 국산 대 외국산비율을 21대79로 하는 '자동차 조립기술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1월에 '코티나 1600D'를 생산했다.
이후부터 현대자동차는 신진자동차의 시장을 잠식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정부는 1972년 국내 자동차산업을 현대, 기아, 신진, 아세아 등으로 4원화하는 내용의 자동차산업 '4원화 방침'을 발표해 진입 장벽을 강화했다.
1976년에는 국내 최초로 자체 모델인 '포니'를 생산해 한국 자동차역사의 신지평을 열었다. 이후 '포니신화'에 힘입어 1984년에는 포니 생산 대수가 50만대를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캐나다에 수출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1985년 엑셀, 1986년 그랜저, 1988년 소나타, 1990년 스쿠프, 엘란트라 등 상품의 다변화는 물론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현대가 자체개발한 알파엔진을 출시하고 갤로퍼를 생산했다.
1994년 엑센트, 1995년 아반떼, 1996년 다이너스티, 스포츠카 티뷰론을 시판했으며, 전 차종 생산 누계가 1천만대를 돌파했다.
1997년 터키 공장을 준공하고 아토스를 생산했다. 1998년에는 EF쏘나타, 그랜저XG를 생산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좌초한 선발업체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
1998년 10월 '기아자동차 국제 공개입찰'의 제3차 입찰에서 최종 낙찰자로 현대자동차가 확정돼 같은 해 12월 기아자동차 주식 51%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1999년 3월 현대그룹에 편입됐다.
1996년 전차종 생산 1천만대 돌파
좌초된 기아주식 51% 인수 계약
'왕자의 난' 정몽구 자동차로 분가
>> 1999년 기아차 그룹 편입
기아자동차의 전신은 1944년 12월 세워진 경성정공이다. 경성정공의 설립자는 김철호 회장이다. 김 회장은 1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자전거 기술을 배웠다.
오사카 소재 삼화공장을 인수해 자전거 부품 너트와 볼트를 만들어 성공했다. 1944년 고국으로 돌아와 자전거 부품 제조공장인 경성정공을 설립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부산에서 국내 최초 국산 자전거인 삼천리호를 출시했다.
1952년 2월 기아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62년 일본 마쓰다자동차와 기술제휴해 배기량 356㏄의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했다.
이 차는 '삼륜차', '딸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1974년 마쓰다자동차의 파밀리아의 차체를 바탕으로 국산 최초의 승용차 브리사를 탄생시켰다.
1976년 10월 아시아자동차공업을 인수했고 1981년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받았다.
당시 소형승합차 봉고 코치는 '봉고 신화'를 창조하며 기아산업의 주력 차종이 됐다. 이후 승합차 베스타, 소형승용차 프라이드 등을 출시했고, 1990년 3월 현재의 회사명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과당경쟁에 따른 적자누적 및 전문경영체제에 따른 도덕적 해이 등으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7년 법정관리를 거쳐 1998년 4월 회사정리절차가 시작됐다.
이후 현대자동차는 1999년 트라제XG, 베르나, 에쿠스 등으로의 제품 다변화 및 국내 최초로 자동차용 연료전지를 개발했다.
그러나 2000년 3월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인 소위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주영 창업주의 2남인 정몽구 공동회장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의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분가했다.
2013년 기준 현대자동차는 세계 100대 브랜드 중 하나로, 판매량 세계 5위의 자동차 회사다.
국내 3개 공장(울산, 아산, 전주)을 비롯해 미국,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 인도, 중국 등에 현지 생산법인을, 세계 18개국에 판매법인을 두고 있으며, 승용차 13종, RV차량 5종, 그 외 택시 및 트럭 13종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연구소로는 미국디자인센터, 미국기술연구소, 유럽기술연구소 및 유럽디자인센터, 인도기술연구소, 일본기술연구소가 있다.
2014년 3월 기준 최대주주는 현대모비스로 20.78%이며, 정몽구 회장은 5.17%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회사는 총 57개사로, 이 중 상장회사는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등 11개사이며, 비상장회사는 현대파워텍,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엠코 등 46개사다.(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기업, 굿모닝미디어)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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