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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시간이라는 절대권력

유성호 발행일 2019-01-09 제22면

흥분했던 새로운 세기 벌써 20년째
여전히 한해 소망·베풀 자비 기원
빠름은 '창조' 동시에 '폭력' 되기도
우리사회 점점 맹목적 가속만 붙어
올해엔 세심함·사려 깊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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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공자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흘러감이란 과연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말했다. 그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감을 강물의 비유를 들어 강조한 것인데, 아마도 공자는 인생에서 시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한 이로서 첫 손에 꼽히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는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을 황폐화한다"라고 말했다. 빠른 속도로 흘러간 시간 뒤에 남는 것은 절대적 무상(無常)이요 폐허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속도의 양감(量感)을 통해 차가운 잔해를 남기면서 흘러갈 뿐이다. 영화로 만들어져 설경구의 빛나는 연기를 기억하게 해주었던 김영하의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은 "무서운 건 악(惡)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것을 이길 수 없거든"이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시간만이 가진 절대권력을 고백하는 순간인 셈이다.

한 해가 가고 오는 것은 매번 맞는 평범한 이치이겠지만, 새로운 세기가 왔다고 흥분했던 시간도 벌써 20년째를 맞으니 감회가 없을 수 없겠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자유와 평화와 이미지로부터 인류는 여전히 역주행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한 해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저 냉혹한 시간이 베풀 자비를 염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른바 '파시스트적 속도'를 동반한 숨 가쁜 성장 리듬을 통해 비약적으로 전진해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질주해온 이러한 아폴론적 활력은, 문명과 테크놀로지의 획기적 발전과 함께 인류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견까지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긴 어둑한 그늘도 만만치 않아, 우리는 깊은 존재론적 소외와 상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적 이면을 꿰뚫는 혜안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사유를 생성해온 역사를 가지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은 공간이 동질적이고 정적이고 단일한 데 비해 시간은 그 움직임으로 인해 다양의 이질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시간을 앞으로도 숱하게 경험해갈 것이고, 그 점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시간관을 첨예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속도감에 반비례할 줄 아는 성찰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부여해가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옛 학교의 한 제자로부터 새해 인사를 담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신을 했더니 이런 문자가 다시 왔다. "새해 첫날 문자가 오늘 도착했나 봐요. 그날 문자가 잘 안 가서 여러 번 전송했거든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신기하네요." 요즘 같은 광속의 시대에 새해 첫날 보낸 문자가 일주일 만에 도착하다니! 그의 밝고 따뜻한 메시지는 그렇게 오래도록 시간의 궤도를 그리다가 늦게 도착하여 조금은 느리게 주위를 돌아보며 사는 것의 신비로움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쩌면 시간의 핵심은 빠르기가 아니라 깊이에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면서, 나는 뜻하지 않은 '달팽이'의 형식을 실감 있게 받아들였다. 그 메시지의 형식은, 느리면서도 선명하게 각인되는 마음씀을 올 한 해 간직하라는 부드러운 권면을 담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명저를 쓴 칼 하인츠 가이슬러는 "빠름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느림은 경시된다. 속도는 창조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점점 가속이 붙으면서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안에는 우리가 빠른 기차를 타고 가면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결국 속도의 효율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속도가 가져다주는 맹목의 성취 제일주의를 비켜서려는 이러한 태도만이, 시간이라는 절대권력에 저자세로 투항하지 않고 그것에 무모하게 저항하지도 않으면서, 예정된 소멸의 덧없음을 향해 친화해가는 마음 자세일 것이다. 한 해 내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누리는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을 빌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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