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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의 한국재벌사·101]엘지-9 3세 경영시대 개막과 그룹명칭 변경

입력 2019-04-01 21:08

21C 걸맞는 '젊은 총수' 구본무 체제 전환

구자경회장
고객 가치 혁신으로 LG를 한단계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사진 왼쪽)과 LG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어낸 고 구본무 제3대 회장. /LG그룹 제공

냉전종식등 '脫이데올로기'
세계 각국 '무한 경제경쟁'
OECD가입등 국제위상 ↑
전 계열사명 'LG'로 통일
해외시장 고려 'CI 재정비'

구본무 회장2





1990년대 세계는 지난 1세기가량 지속된 냉전체제 종식과 글로벌라이제이션시대 개막으로 특징지어진다.

1989년 11월 통일 독일 탄생 및 그해 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동서 간 냉전체제의 종식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탈(脫)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은 무한의 경제경쟁에 직면했다.

>> 국내외 경영환경 '급변'

국내적으론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의 6·29선언을 계기로 전국에서 '선(先) 성장, 후(後) 분배'의 개발철학에 반발하는 사회운동이 절정을 이루면서 산업 민주화가 정착됐다.



인플레이션의 확대재생산이 초래한 부동산불패 신화까지 기세해 고비용-저효율의 저성장시대가 초래된 것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다자간협상)의 타결은 또 다른 변수로 한국 정부는 1996년에는 국내 증권시장과 유통시장을 전면개방하고 그해 9월에는 국제결제은행체제(BIS)에, 10월에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각각 가입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국제적 위상을 업그레이드했다.

국내·외적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크게 변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계기로 럭키금성그룹은 1995년 1월에 그룹의 명칭을 'LG'로 변경했다. Lucky의 'L'과 Gold Star의 'G'를 조합해 'LG'로 작명한 것이다.

1984년 그룹 계열에 있는 광고회사인 LG애드가 발족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 및 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됐다.

1995년 LG그룹으로의 명칭변경을 계기로 럭키·금성·럭키금성·반도 등이 혼재돼 있던 각 계열사의 명칭을 전부 LG로 통일했다. 수출 지향형 제조기업으로서 해외시장을 고려한 CI 재정비 작업의 일환이었다.

>> 구자경 회장 퇴임의사


한편 1995년 2월 22일 오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한 구자경 당시 LG 회장(현 명예회장)은 "21세기에 LG가 세계 초우량기업이 되려면 젊고 의욕적인 사람이 그룹을 맡아 이끌어야 한다"며 퇴임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창업자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손이자 구자경 회장의 장남인 고 구본무가 국내 정상의 LG그룹 제3대 회장에 취임한 것이다.

1975년 (주)럭키(현 LG화학)의 과장으로 입사한 구 회장은 심사과장·수출관리부장·유지총괄본부장 등을 맡았다. 1981년 금성사(현 LG전자)의 이사로 승진한 구 회장은 일본 주재 상무, 기획조정실 전무, 부사장 등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왔다.

입사 15년째인 1989년 그룹 부회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그룹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도 5년이 더 지난 1995년에 마침내 그룹의 총수가 된 것이다.

급변한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부합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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