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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상]북미 정상을 죽미령에 모시고 싶다

곽상욱 발행일 2019-04-30 제23면

1950년 7월 北-유엔군 첫 일전 오산 벌판에
추모·역사 교육의 장 '평화공원' 9월 완공돼
'북미 적대' 첫 고리가 맺힌 곳서 악연 털고
양쪽이 '공존의 손' 맞잡는 모습 꼭 보고파


곽상욱1
곽상욱 오산시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비핵화-평화협상이 다시 예측불허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협상 실무진 사이에 공방이 오가기는 하지만, 다행히 양 정상의 관계가 굳건해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가 유지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당분간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미래를 전망할 때, 조만간 불확실한 안개가 걷히고 굳건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확신한다. 평화체제가 남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반드시 이뤄내지 않으면 안 되는 당사국 모두의 당위이기 때문이다.

북미간 대화 협상이 더욱 뜻깊은 것은, 마침 오산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매우 의미 깊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산 죽미령에서는 3만3천여㎡ 부지 위에 '유엔초전기념 평화공원'이 한창 건설 중이다. 69년 전 오산 벌판에서 펼쳐진 북한군과 유엔군의 첫 일전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한편으로는 오산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10년 숙원사업이다.

평화공원 건립을 처음 추진한 이래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국내외 많은 이들의 성원과 지원으로 공원 조성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올 9월쯤 완공할 계획이다.

아직도 죽미령이 어떤 곳인지 묻는 분을 가끔 만난다. 죽미령은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의 한 획을 긋는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죽미령 전투는 1950년 7월 5일 오전 8시 16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6시간 15분 정도 진행됐다. 서울을 점령하고 남하하던 북한군이 오산 죽미령에서 유엔군 선발대로 일본에서 긴급히 파견된 미군 스미스특임부대와 맞부딪쳤다.

결과는 유엔군의 참패였다. 전투에 투입된 스미스부대는 장병 540명 가운데 181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나머지는 대전 방면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2개 사단의 압도적 병력에 전차군단까지 가세한 북한군은 미군을 격파한 뒤 죽미령을 유유히 넘었다.

하지만 북한군의 추가 진군은 주춤했다.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에 처음 직면한 북한은 진격을 멈춘 채 전쟁의 전체 형세를 재점검해야 했고, 사흘 뒤 긴급히 소련의 개입을 촉구하는 SOS를 보낸다. 이 기간 국군과 유엔군은 전황을 다시 추스를 황금 같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죽미령에는 1958년 스미스부대 540명을 뜻하는 돌 540개를 쌓은 기념비가 세워졌고 1982년에 새 기념비가 조성됐다. 오산시는 2013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죽미령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유엔군초전기념관을 개관했다.

죽미령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 당사자로 처음 교전함으로써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악연을 맺은 장소다. 북미 적대의 첫 고리가 맺힌 곳이다.

이제 죽미령은 69년 전 그 악연의 고리를 풀고 전쟁의 아픈 기억을 넘어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새로운 장소로 재탄생하고 있다. 죽미령 평화공원은 전쟁에서 산화한 꽃다운 젊은이들을 추모하고, 전쟁과 평화의 의미가 후대에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는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죽미령 평화공원 완공을 앞두고, 나는 죽미령이 과거 비극의 역사를 딛고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상징하는 새 역사의 이정표가 될 것을 상상하고 희망해본다. 그 새 역사를 위해 북미 정상을 이곳에 모시고 싶다. 양쪽이 처음 전쟁의 포화를 나눈 곳에서 평화의 손을 맞잡는, 그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죽미령에서 보고 싶다.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곽상욱 오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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