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인천의 얼굴·(12)]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반장' 강정순 할머니

박경호 박경호 기자 발행일 2019-05-28 제1면

어릴적 사할린 이주 49년만에 귀향… 부친·오빠는 규슈로 끌려가 생이별

인천의 얼굴4

방직공장 다니며 징용 한국인과 결혼
지금 생활 '행복' 보상금 일부 기부도

2019052601002204400108102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당신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소설 몇 권이 나올 거라고들 하십니다.

그만큼 격동의 시대를 살았고 그 삶은 고달팠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드라마라도 어찌 이들의 아픈 인생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요.

1999년 3월 생겨난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이 연수구에 있습니다. 전국에 하나뿐인 시설입니다.

여기 사는 1932년생 강정순 할머니.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열한 살이 되던 1942년 일본 최북단 사할린으로 이주했습니다. 부모님과 오빠, 남동생 둘, 온 가족이 떠났습니다.



일제가 사할린 탄광에서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다고 꾀어낸 것이었지요. 아버지와 오빠가 탄광에서 일했습니다. 안전시설도 없어 무너지기 일쑤였지요.

참 많이도 죽어 나갔습니다. 사할린에 혼자된 부인들이 많았던 이유입니다. 6개월이나 지났을까요. 일제는 아버지와 오빠를 일본 남쪽 끝 규슈의 탄광으로 옮겼습니다. 생이별이었고, 그게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 사할린은 옛 소련 땅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거기서 15년 넘게 방직공장에 다녔습니다. 그 덕분에 아직도 러시아 돈으로 연금을 받기는 합니다. 스물이 되었을 때 역시 사할린에 징용돼 온 한국인 남자와 결혼해서 애들도 낳았습니다.

그 아이들은 러시아 사람들하고 결혼해 카자흐스탄 등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착했던 남편은 사할린에서 세상을 떴습니다.

20년이 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는 82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균 연령 85세. 1주일에 5명이 세상을 떠날 때도 있습니다. 359명이 거쳐 갔습니다. 강정순 할머니는 2006년 이곳에 왔습니다.

지금은 복지관 입소자들을 대표하는 반장을 맡고 있습니다. 1991년 '사할린 동포 고국 방문행사'가 있었을 때 49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그때 아버지와 오빠 이야기를 들었지요. 해방이 되자, 아버지와 오빠는 규슈에서 사할린 가는 배를 타려고 했다네요.

그런데 사할린이 불바다가 되어 모두 죽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답니다. 그 둘은 부산으로 오게 되었고요. 고향 방문 행사 때 아버지 산소에도 가봤습니다. 여든여덟 할머니는 지금 여기 복지관 생활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행복감이 더 어려운 이웃에게 눈을 돌리게 했나 봅니다.

4년 전 남편 앞으로 강제징용 보상금이 나왔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부를 적십자사에 기부했거든요. 연수구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은 일 년 내내 돌려보아도 질리지 않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드라마 세트장입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의 얼굴'을 찾습니다. (032)861-3200 이메일 : say@kyeongin.com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