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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20)표절(剽竊)Ⅰ]서로 베끼면서 기반 다진 바로크시기

김영준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9-07-26 제1면

당시엔 '고유 창작품' 개념 없어
바흐·헨델도 숱하게 편곡·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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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도 표절이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18세기 중반 바로크 시기까지, 특정 작곡가의 '고유한 창작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작곡가들은 궁정과 교회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서 연주될 곡을 만들었다.

이처럼 궁정과 교회에 고용돼 창작활동을 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은 행사 후에는 궁정이나 교회의 문서고로 들어갔다. 작품은 작곡가의 소유가 아닌 고용자의 소유였던 거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작곡가들은 수시로 열리는 행사에 맞춰 새 작품을 쓸 때 자신의 이전 작품이나, 다른 이의 작품을 다시 쓰고는 했다.

작곡가끼리의 표절이 공공연하게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요즘의 표절 기준에 대입해서 본다면, 바흐와 헨델은 도덕적 비난은 물론이고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바흐의 작품에 이바지한 작곡가로 비발디를 비롯해 파헬벨, 프레스코발디, 북스테후데 등 많은 이들이 거론된다. 바흐는 또 자신의 이전 작품을 편곡해 숱하게 재활용했다.

바흐의 대작 '마태 수난곡'이나 '요한 수난곡'의 일부는 이전에 발표했던 칸타타들이다.

헨델은 '표절의 제왕'이라 할 만큼 남의 것 베끼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무지오 스케볼라'의 경우 3막만 헨델의 작품이며, 1막은 아마데이, 2막은 보논치니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헨델은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단 3주 만에 완성했다.

몇몇 전기 작가들이 "경건한 신앙심(하늘에서 받은 영감)으로 헨델이 3주 만에 대작을 완성했다"고 기술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후대의 전문가들은 순수한 창작 시간이 아닌 다른 이들의 작품을 더러 인용하는 과정이었을 것으로 의심했다. 20세기 전반기의 음악학자 앨프리드 아인슈타인은 "헨델은 도둑질을 통해 뭔가를 만든 사람이다. 그를 거치면 돌이 금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바로크 시기 작곡가들은 서로의 작품을 '표절'하면서 음악사의 기반을 다졌다. 18세기 후반부를 지나 19세기에 진입하면서 소위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 예술가'가 탄생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의식 또한 강화됐다. 작곡가는 악보를 소중히 취급했으며, 일일이 작품료와 인세를 챙겼다. 이때부터 표절은 인용이 아닌 범죄로 인식되었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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