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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복지국가로 가는 길

허동훈 발행일 2019-10-10 제22면

나부터 세금 더 내겠다는 의식필요
정치권도 '증세' 솔직하게 앞장서야
복지외 사용과해 세출구조 개편시급
성과 낮은 R&D·벤처 거액 지원등
정부, 다양한 영역 간섭·규제 줄여야


경제전망대-허동훈10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선진국인가? 여러 국제기구는 이미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복지가 일정 수준은 넘어야 한다. 복지의 필요조건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다. 2014년 보건복지부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노인 약 69만명을 대상으로 자살 동기를 물은 결과 40.3%가 경제적 어려움을 첫 번째로 꼽았다. 그만큼 경제적 요인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속도와 수준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사회적 공감대는 있다. 흔히 생각하는 대로 부자와 대기업에 세금을 많이 걷으면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 7위로 이미 높은 수준이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해서 스웨덴의 소득세를 살펴보자. 대략 연소득 5천900만원까지 32%, 8천300만원까지는 52%, 8천300만원 초과분은 57%의 세율이 적용된다. 푼돈을 벌더라도 거의 예외 없이 32%의 소득세를 낸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1인당 평균소득이 3천519만원이다. 스웨덴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두 배이므로 1인당 평균 근로소득이 7천만원 정도는 될 것이다. 그 정도면 평균 소득세율이 약 35%다. 반면 한국에서 연소득 3천519만원이면 각종 공제 제도 때문에 세금을 거의 안 낸다. 2017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43.6%가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상위 10%가 소득세 82.7%를 낸다. 그 비율이 다른 선진국은 50~70% 정도다. 일반적인 부자 증세만으로는 세입 확대에 한계가 분명하다. 스웨덴은 부가가치세율도 25%로 우리의 2.5배다. 다른 북유럽국가도 20%가 넘는다. 노르웨이는 북유럽국가 중 소득세율이 낮은 편이지만 법인세율이 높고 산유국이므로 국가재정수입의 20%를 석유에서 얻는다.

북유럽 사례를 보면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증세로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세원도 확보하고 부자들의 증세 거부감을 낮출 수 있다. 국민이 나부터 세금을 더 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정치권도 증세에 대해 솔직하게 앞장서야 복지국가가 가능하다. 세금을 덜 걷고 선별적 복지에 치중할 것인지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삼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할 것인지는 국민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이 증세 없이 또는 부자증세만으로 보편적 복지를 하겠다고 나서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복지국가로 가는 두 번째 길은 세출 구조 개편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조세부담률, 즉 GDP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로 OECD 평균치 24.9%에 못 미친다. 속도가 문제지만 한국의 세금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세입보다 세출에 더 큰 문제가 있다. OECD 통계에서 사회적 지출은 광의의 복지비용을 의미한다. OECD 국가의 사회적 지출은 GDP 대비 평균 20%다. 조세부담률이 평균 24.9%이므로 세수의 80%가 복지지출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적 지출 비중은 11.1%로 세수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에 그친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우리나라의 복지지출 수준이 아직 낮은 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세금 걷어서 복지가 아닌 곳에 무척 많은 돈을 쓴다는 것이다.

국가가 경제개발을 선도한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 남아서인지 지금도 정부가 시장의 수많은 영역에 간섭하고 규제하고 각종 사업을 벌인다. 농업 분야의 보조금은 OECD 평균의 2.5배다. GDP 대비 정부 R&D 예산이 세계 정상권이지만 성과는 낮다. 벤처기업을 키운다고 거액을 쏟아붓는다. 중소기업 지원제도가 차고 넘쳐서 중견기업으로 승격을 피하는 기업도 있다. 수요가 없는 공항과 철도도 짓는다. 수많은 협회와 단체에 각종 보조금을 지원한다. 정부 돈을 타내기 위한 제안서를 대신 써주는 업체도 있다.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싶어 하는 관료사회의 속성과 공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합작품이고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간단하다. 국민은 자신부터 세금을 더 낼 각오를 하고 정부는 비복지 분야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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