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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아테네 학당과 솔베이 회의

임성훈 발행일 2019-10-1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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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인, 학자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라파엘로가 1510년에 완성한 벽화 '아테네 학당'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인문학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계에도 '아테네 학당'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진이 있다. 1927년 10월 개최된 제5차 솔베이 회의의 참석자들을 찍은 단체사진이다. 벨기에 기업가 어니스트 솔베이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솔베이 회의는 각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물리학 및 화학학회로 3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제5차 솔베이 회의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참석자 29명 중 절반이 넘는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일 정도로 과학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를 비롯해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퀴리부인 등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 사진에 왜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없을 정모(정기모임)'란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가 간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도 이 회의에서다.

사실 아테네 학당은 예술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모델을 활용한 상상화인 데 비해, 솔베이 회의 사진은 실제 인물들을 촬영한 실사판이기에 감상(?)하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통분모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이 회의에서 상대성이론과 더불어 현대물리학의 한 축인 양자역학을 둘러싸고 아인슈타인과 보어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자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이데아와 현실에 대해 설파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교양과학서적을 펴내면서 '시간여행자'를 찾아보라는 주문과 함께 솔베이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 자신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게재하는 재치를 발휘,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했다.

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천체물리학자인 캐나다계 미국인 제임스 피블스, 스위스의 미셸 마요르 등 3명의 물리학자가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처럼 부러운 소식을 듣기만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도 명화 아테네 학당이나 솔베이 회의 사진처럼 인류 역사의 의미 있는 한 컷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 쏟아져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임성훈 논설위원